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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호계서원(虎溪書院) 조덕린(趙德隣) 신원 관련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788.0000-20170630.KS0372-2-6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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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호계서원
작성시기 1788
형태사항 크기: 103.7 X 61.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8년 호계서원(虎溪書院) 조덕린(趙德隣) 신원 관련 통문(通文)
1788년(정조 12) 11월 15일에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영산서원(英山書院)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의 신원(伸寃)을 조정에 요청하는 일을 함께 의논하자고 알려오고 있다. 현재 관작은 화복되었지만 아직 신원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788년에 虎溪書院에서 英山書院에 보낸 通文.
1788년(정조 12) 11월 15일에 虎溪書院에서 英山書院에 보낸 通文이다. 玉川 趙德隣(1658~1737)의 伸寃을 위해 조정에 요청하는 일을 英山書院에서 함께 의논하자고 알려오고 있다.
통문은 첫머리에서 "玉川 趙先生의 官牒은 이제 회복되었고, 솟구치는 원한도 이미 드러났다. 하지만 輿情의 억울함은 실로 예전에 抱枉하던 나날보다 심하다. 40여 년 이래로 한결같이 畏約은 회복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즉 玉川 趙德隣의 몰수당한 관작은 회복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신원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다시 의논을 도모하여 辨白하고자 하는 것이 어찌 우리 영남 사림의 심한 慨惋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면서 다시 기세를 올려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764년(영조 40)의 거사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하면서 英山書院에서 논의하자고 말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8년 호계서원(虎溪書院) 조덕린(趙德隣) 신원 관련 통문(通文)

通文。
右文爲通諭事。伏以。玉川趙先生官牒旣復。而旋收盆寃己暴。而還翳其爲輿情之抑鬱。實有甚於昔年抱枉
之日。而自來四十餘年一味。畏約不復。敢出氣申論圖。所以辨白者。豈非吾嶺吾林慨惋之甚乎。況今太歲涒灘追。惟先生當
日奉命號召之績。而莊誦我
正考。是年是人政合記錄之敎。尤豈不愴然而興感。惕然而思奮乎。迺者陶山士林之倡發文諭。。可見彛衷之所同激感。而第
恨此論之發之晩。而此歲且將垂盡矣。雖欲復申去甲申叫閽之擧。而重蒙逢今年述古事之曠典。事勢有難容
旋。豈不重可慨也哉。然此事不必以歲月爲限。而有所前却。今日吾黨之責。惟在盡誠力。期於快覩好還之天。伏願僉尊先。自
貴院合同商量。別有規畵以圖一番伸暴之地。千萬幸甚。
右文通。
英山書院。戊申十一月十五日。虎溪書院。都有司。進士。金憲運。齋有司。幼學。權大進金憲壽。製通。金九壽。寫通。柳致任。會員。前大諫柳致明。幼學。金道洙李海德。前正言朴宗範。進士。金亨壽
李五秀。幼學。柳允休金南運金漸運李相洛金民壽李顯勣。進士。金秉壽金松壽。幼學。權變權{火+永}
金羲運李庭實金祚運金鎭坤李氣秀金鎭龍李南秀前校理金龍洛。前承旨金鎭右。幼學。柳華鎭柳衡鎭
權虎禹龜明金炳運李相華李相聖。進士。金岱鎭金健壽柳致游。幼學。金範洛朴大壽李庭雲金光壽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