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 9월 2일, 三守軒 李輝遠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자신의 딸이 상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
1762년 9월 2일에 三守軒 李輝遠(1706~1775)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자신의 딸이 상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아들이 찾아와 편지를 전해주어 이를 통해 상대의 안부를 확인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돌림병 때문에 상대 집안 식구들이 모두 흩어져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염려된다고 하였다. 또한 상대의 막내아우가 어린 자식의 상을 치러야 한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애통해하였다. 이어서 상대의 근황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의 경우는 잦은 우환과 근심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고, 자신의 사위인 幼性, 즉 趙居善이 왔다가 떠나니 이별의 회포가 서글프다고 하였다. 자신의 딸은 처음에는 겨울 전까지 이곳에 머물고자 했지만, 상대측 사정 때문에 돌려보내야 하니 사위가 돌아온 이후에 날짜를 헤아려 이야기 해 달라고 하였다.
발급인 이휘원은 본관은 載寧, 자는 子實, 호는 三守軒이며, 부친은 元煥이다. 寧海에 거주하였다. 저서로 문집과 『家訓增補』, 『觀省錄』이 전한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에 의하면 이휘원은 趙居善(1738~1807)의 장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조거선의 부친인 月下 趙運道(1719~1796)와 사돈지간이다. 따라서 피봉에 언급된 수취인 정보로 '趙生員', '尊兄'은 조운도일 가능성이 높다. 편지 본문 안에서도 첫머리에 '상대의 아들이 다녀간 인편으로 상대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고, 뒤에도 幼性 즉 사위인 조거선이 왔다가 떠난 슬픔을 이야기하고, 그가 돌아간 뒤에 자신의 딸을 상대측 집안으로 돌려보낼 기일을 정해달라고 한 점, 상대에 대해 자신을 '査弟'라고 표현한 점 등을 통해서도 수취인을 조운도로 추정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