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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이휘원(李輝遠)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762.4777-20170630.03722570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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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휘원, 조운도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762
형태사항 크기: 31.8 X 3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62년 이휘원(李輝遠) 서간(書簡)
1762년 9월 2일에 이휘원(李輝遠)(1706~1775)이 조 생원(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아들이 찾아와 편지를 전해주어 안부를 확인하였지만 돌림병 때문에 상대 집안 식구들이 모두 흩어져 지내고 있고, 또 상대 막내아우의 어린 자식의 죽음 등 여러 소식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사위가 왔다가 떠나니 이별의 회포가 서글프다고 하였다. 자신의 딸을 상대측 사정 때문에 돌려보내야 하니 사위가 돌아온 이후에 날짜를 헤아려 이야기 해 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762년 9월 2일, 三守軒 李輝遠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자신의 딸이 상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
1762년 9월 2일에 三守軒 李輝遠(1706~1775)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자신의 딸이 상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아들이 찾아와 편지를 전해주어 이를 통해 상대의 안부를 확인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돌림병 때문에 상대 집안 식구들이 모두 흩어져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염려된다고 하였다. 또한 상대의 막내아우가 어린 자식의 상을 치러야 한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애통해하였다. 이어서 상대의 근황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의 경우는 잦은 우환과 근심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고, 자신의 사위인 幼性, 즉 趙居善이 왔다가 떠나니 이별의 회포가 서글프다고 하였다. 자신의 딸은 처음에는 겨울 전까지 이곳에 머물고자 했지만, 상대측 사정 때문에 돌려보내야 하니 사위가 돌아온 이후에 날짜를 헤아려 이야기 해 달라고 하였다.
발급인 이휘원은 본관은 載寧, 자는 子實, 호는 三守軒이며, 부친은 元煥이다. 寧海에 거주하였다. 저서로 문집과 『家訓增補』, 『觀省錄』이 전한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에 의하면 이휘원趙居善(1738~1807)의 장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조거선의 부친인 月下 趙運道(1719~1796)와 사돈지간이다. 따라서 피봉에 언급된 수취인 정보로 '趙生員', '尊兄'은 조운도일 가능성이 높다. 편지 본문 안에서도 첫머리에 '상대의 아들이 다녀간 인편으로 상대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고, 뒤에도 幼性 즉 사위인 조거선이 왔다가 떠난 슬픔을 이야기하고, 그가 돌아간 뒤에 자신의 딸을 상대측 집안으로 돌려보낼 기일을 정해달라고 한 점, 상대에 대해 자신을 '査弟'라고 표현한 점 등을 통해서도 수취인을 조운도로 추정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62년 이휘원(李輝遠) 서간(書簡)

趙生員 下史。
尊兄 謹謝上狀。[手決]謹封。
頃者胤郞袖致
尊翰。承審向來。
愆節卽收勿藥。閤中憂患亦已就
平。種種慰幸之至。第以忌患近逼。至有
眷率分離之撓。是爲之悶念無已。況婢
使病臥此際。則其爲切迫。尤如何。
季氏兄瘞夭之慘。亦甚憐慘而已。便後
多日。不審邇間。
靜履啓居更何似。弟。入秋些少之苦。尙
未快。自餘憂撓多端。是悶奈何。幼性
此來留一日治發。不但別懷倍悵。遠路
行李。亦可念耳。女息初意或留冬前
矣。彼中事勢適然。則似難
容以私情。當俟幼性廻還後。
更爲量示之如何爾。適逢
道谷
吳郞行。拔忙附謝。千萬不
宣。伏惟
下照。謹謝上狀。
壬午 九月 初二日。査弟 輝遠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