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8년 8월 14일, 李萬宏이 상대와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가 전해준 이야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알리며 여러 근황을 알리기 위해 趙性道에게 보낸 편지
1748년 8월 14일에 李萬宏(1704~?)이 상대와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가 전해준 이야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알리며 여러 근황을 알리기 위해 趙性道(1707~1817)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李氏 벗이 온 편으로 상대의 편지를 받고, 상대의 안부를 확인하였지만 상대 큰 숙부의 환후 소식을 알게 되어 염려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경우는 외지에 나와 살면서 항상 바쁘던 와중에 건강할 날도 없어 스스로 가련한 처지임을 알렸다. 상대가 보내준 편지의 별지에 '어떤 일'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이에 대해 자신은 매우 통렬하게 생각된다고 하면서, 세력이 없는 자신들의 형편을 한탄스러워 하였다. 또한 學士公에 관한 일을 언급하며, 자신이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서로 문안하는 일이 없었고, 또 星山에서부터 둘러가는 길을 택해 자신을 들리지도 않고 가벼렸음을 언급하였다. 그래서 다음에 만날 일이 있다면 심하게 다그치지는 않으며 이야기 해 보겠지만 요즈음의 선비들이 박정한 것을 좋아하고 이러한 수응을 싫어하니 뜻대로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자신의 仲兄이 이달 5일의 散政에서 恭陵郞에 제수되었음을 알리고, 서울에 사은숙배하러 20일 전에 떠날 것이라고 했다.
편지의 본문에서 언급된 "示事" 즉 상대가 '小錄을 통해 알려준 어떤 일'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알 수 없다. 이어서 언급된 이른바 '學士公'에 관한 일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본문 곳곳에 "세상의 도리가 寒心해진 것에 관계된다.", "우리는 세력이 없어서", "요즘의 선비들은 박정한 것을 좋아하고 이러한 종류의 수응하는 일을 싫어한다." 등의 내용을 통해 당시 향중에서 벌어진 세력들 간의 쟁단과 작폐의 처리 문제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학사공에 관한 일' 역시 학사공과 연관하여 벌어진 쟁단에서, 모 인물과 갈등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피봉에 적힌 "命天兄"이라는 언급을 통해 수취인은 한양 조씨의 인물인 趙性道임을 알 수 있다. 조성도는 자는 命天, 호는 拙川이며 부친은 喜常이고, 玉川 趙德鄰의 손자이다.
발급인 이만굉은 본관은 延安, 자는 仁仲이며, 부친은 浹이다. 안동에 거주하였으며, 1725년 진사에 합격한 이력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