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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년 조성도(趙性道)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727.4776-20170630.03722570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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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조성도, 조덕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727
형태사항 크기: 41.2 X 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27년 조성도(趙性道) 서간(書簡)
1727년 1월 21일, 조성도(趙性道, 1707~1757)가 함경도 종성에 유배중인 할아버지 조덕린(趙德鄰, 1658∼1737)에게 보낸 편지이다. 임금이 을사년 이후 유배한 사람을 풀어주라고 했기 때문에 할아버지도 곧 풀려날 것이며, 장고(長皐) 할아버지, 오천(烏川) 할머니, 천전(川前) 숙모 상을 연달아 치렀다고 했다. 마을의 전염병이 줄어들고 종가 계부(季父)의 초례를 치른 기쁜 소식과 여름 초에 외중숙의 상을 당한 슬픈 소식과 할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727년 7월 17일, 영양 注谷에 살고 있는 손자 趙性道함경도 종성에 유배중인 趙德鄰에게 보낸 안부편지
1727년 7월 17일, 영양 注谷에 살고 있는 손자 趙性道(1707~1757)가 함경도 종성에 유배중인 趙德鄰(1658~1737)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 부친들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연달아 4월 두 차례 내려주신 편지를 5월 보름 후와 6월 그믐 전에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때에 기거하시는 체절을 잘 알겠습니다만 북단 3천리 산해를 두고 멀리 떨어져 심부름꾼도 수개월이 걸려야 이를 수 있으니, 이 때문에 잠시라도 우울한 마음을 풀 수 없다고 했다.
올 여름의 폭염이 예년에 비해 배나 혹독한데, 북쪽의 추위를 막는 집은 더운 날 살기 적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객중에 기체후는 또 어떠한지 물었다. 남북으로 떨어져 우러르며 미치지 못하니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이어 조정의 상황을 알려 주어 조부가 곧 유배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편지 내용은 천도가 좋게 돌아오고 있으니, 다행이고 임금이 을사년 이후로 유배된 사람들을 방송하라는 명이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비록 길에 떠도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낭설 같지는 않다고 했고, 이미 군대가 길에 올라 며칠이면 조부가 계신 곳에 당도할 것이며, 군대가 돌아 올 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기에 해당하니 모름지기 기쁘고 즐거운 모습에 끝이 없다고 했다. 천은이 갖가지로 이에 이르러 감격의 눈물이 난다고 했다.
조성도는 주곡 마을의 여러 소식도 전했다. 종가의 喪禍가 연달아 겹쳤는데, 長皐 할아버지, 烏川 할머니, 川前 숙모 상이 한달 사이 연달아 일어나서 매우 비통한데, 만리 밖에서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 사물에 닿는 정리가 더욱 되살아날 것이니 어찌하고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곡 마을의 돌림병이 이미 사그라졌고, 종조부님의 환후도 이미 더칠 조짐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季父의 초례는 무사히 치렀지만, 여름 초에 외중숙의 상을 당하여 舊感과 新愴이 서로 갈마든다고 했다. 게다가 외왕모께서는 疚懷가 너무 심하여 기식이 엄엄하다고 했다. 밖에서 마음 졸이시는 할아버지를 염려하면서 나머지 사연은 찾아뵙고 머물면서 모두 아뢰겠다고 했다. 먼 길 행차에 어긋남이 없이 빨리 돌아오시어 주야의 바람에 부응하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편지의 수급자 조덕린의 자는 宅仁, 호는 玉川, 본관은 한양이다. 1677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1691년 문과 급제한 이후 교리·사간 등을 역임했고, 1725弼善으로 당쟁의 폐해를 상소한 문장 속에 노론의 득세를 비난한 내용이 당쟁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하여 함경도 鐘城에 유배되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풀려나 부응교에 등용된 이후 동부승지까지 올랐으나 1736년 서원의 濫設을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노론의 탄핵으로 이듬해 제주에 귀양 가던 도중 강진에서 죽었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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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27년 조성도(趙性道) 서간(書簡)

祖父主前 上白是。謹封。
諸父主返駕後。續承四月兩度。
下書於五月望後。六月晦前。伏審伊時
起居節甚詳。而極北三千里懸隔山海。使必數月而後
能至。烏可以此而暫釋紆鬱之誠耶。今夏炎熱
比常歲倍酷。而北土御寒之屋甚非暑日所宜居。伏
未審
客中氣體候更若何。落落南北。瞻望不及。則日夜切
祝。惟在於天道之好還。何幸。今日陰曀掃除。
朝著肅淸。而且伏聞自上有乙巳以後。諸謫放送之
命。此雖出於道途之行言。而似非浪傳。伏未知其已
戒行登程。而幾日當到耶。還旆之時。又値不寒不熱
之節。其爲欣喜容有涯極。而天恩種種
至此。感淚先零。第一家喪禍一向層疊。長
皐 祖主。烏川祖母主。川前叔母主喪事
連出於一月餘。已極悲慟。而萬里外荐聞
此報。觸境情理益復。無奈奈何奈何。稍
可幸者。注谷村患已向
停熄。而從祖父主患候。更
無越添之漸。季父主醮禮
無事過行耳。孫子姑依侍
側。而夏初又遭外仲叔喪。
舊感新愴交戰。于兼以
外王母疚懷太過。氣息奄
奄云。在外煎憫尤當如何
耶。餘非久當拜謁都
留口達。萬伏祝長程
行次無撓。式遄以副晝宵之望。不備伏惟
下鑒。上白是。
丁未七月十七日。孫子 性道 白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