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憲奎가 朴齊淵에게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〇〇년 姜憲奎(1797~1860)가 朴齊淵(1807~1890)에게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과거 시험이 박두하여 고민스러운데, 이번 과거는 가장 엄준한 試官이 담당한다는 소식에 걱정하며 인근의 노련한 선비들도 같은 고민이라 하였다. 내성(乃城 : 봉화의 옛 지명)의 여러 형들이 과거에 실패를 본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고, 講經시험을 치르는 사람이 一所에 82인, 二所에 96인이라 전하고, 25일 到記科에서 朴昇壽가 제일 잘 했다는 소식에 기뻐할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에 날짜가 기재 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1845년(헌종 11년) 3월 25일자에 春到記에서 製述 箋에 으뜸을 차지한 박승수를 直赴殿試 하게 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어 그 즈음의 편지임을 알 수 있다.
발신인 강헌규(1797~1860)의 본관은 진주, 자는 景受, 호는 農廬, 守素齋이다. 1822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일생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다. 1844년 道薦을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문집』10권 5책이 전한다.
수신인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에 거주하였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박승수(1806~1873)는 본관은 반남, 자는 平老이다. 184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부수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고 1864년에 대사성, 그 이듬해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慶北儒學人物誌』, 한국국학진흥원, 영남유교문화진흥원, 2008.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8.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