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7월 2일, 기복 상중의 權五愼이 상대의 생양가 가족과 친척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 李喆浩에게 보내는 편지
1930년 7월 2일에 기복 상중의 權五愼(1894~1947)이 상대의 생양가 가족과 친척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 李喆浩(1896~1950)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가을이 생기는 때에 生養家 두 어버이의 건강이 만중하시고, 상대를 비롯한 식구들, 특히 근친 가 있는 자신의 며느리도 잘 지내며, 石浦의 근황은 어떠한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의 주변에 대하여서는 조부와 숙부께서 병환이 들지는 않았으나 魯東 재종조부가 여러 달 편찮으셔서 걱정이 많다 하였다. 또 상대에게 사위가 되는 자신의 아들이 지금 문안하러 가는데, 머물 기간이 짧더라도 개학 때에는 늦지 않도록 보내 달라고 당부하였다.
석포는 영양군 석보면 원리, 지금의 두들마을을 가리킨다.
권오신은 본관이 안동으로 屛谷 權榘의 셋째 자제 樹谷 權{糸+甫}의 후예이다. 字가 중휘, 호는 實菴으로 아들 景赫이 이철호의 딸 재령 이씨를 아내로 맞았으므로 이 편지의 수신자는 이철호임을 알 수 있다.
이철호는 字가 道元으로, 생가 아버지는 存齋 李徽逸의 9세손 篪發인데, 출계하여 葛庵 李玄逸의 주손 晦發의 뒤를 이었다. 발신자 권오신이 생양가의 근황을 물은 것은 이 때문이며, 石浦의 근황을 물은 것은 그 곳에 존재와 갈암의 선대인 石溪 李時明의 종가가 있어 그 집안과 여러 대에 걸친 세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