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0월 17일, 禫制人 姜鳳元이 거상 중 아내의 초상까지 겹쳐 고생하던 중에 그 사이의 안부를 묻고, 상대의 大祥 行禮 때에 자신은 병세로 기동하기 힘들고, 아이들은 거상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어 한스럽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상기를 마치는 李生員에게 보내는 편지
1921년 10월 17일에 禫制人 姜鳳元(1847~1924)이 거상 중 아내의 초상까지 겹쳐 고생하던 중에 그 사이의 안부를 묻고, 상대의 大祥 行禮 때에 자신은 병세로 기동하기 힘들고, 아이들은 거상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어 한스럽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상기를 마치는 李生員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세월이 지나 어느새 終祥이 다가오니 孝思가 새삼스러울 것이라 하고 거상 중의 건강을 잘 지키며 마을 내 기운이 깨끗하여 큰일을 치르는 데 장애는 없는지 물었다. 또 그 사이 아내의 상을 입었으니 심한 고생을 짐작할 만하다 하고, 아드님도 큰 슬픔 가운데 몸을 부지하는지 궁금해 하였다. 한편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는 상기를 마치는 즈음의 슬픔이 더욱 절실한 가운데 기침이 심해지고 원기가 빠져 고통스럽다 하고, 이 때문에 종상의 行禮에 참석할 수가 없으며 아이들 또한 성묘에 골몰하느라 귀가하기 전이라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니, 매우 서운하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대상례를 잘 치르기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고, 추신에서 懋汝의 안부를 물었다.
강봉원은 봉화 법전에 살았던 姜濟(1826~1919)의 아들이다. 字는 舜來, 호는 海隱이며 참봉과 寧越府使를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