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11월에 三峰書堂에서 李碩文 문집 간행에 관한 사안으로 晴川書堂으로 보낸 通文
1916년 11월에 三峰書堂에서 李碩文 문집 간행에 관한 사안으로 晴川書堂으로 보낸 通文이다. 통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遯齋 李碩文(1713~1773)은 생전에 訓鍊院 主簿를 역임했고, 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그는 사도세자가 죽은 임오화변 와중에 무관의 신분으로 부당함을 간하다가 삭탈관직되어 낙향하였다. 통문의 그의 충절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즉 영조연간의 화변이 일어나자, 죽음을 무릎쓰고 간하다가 곤장을 맞고 파직되어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군인 사도세자가 있는 북쪽으로 협문내고 살았다고 하며, 임오화변을 주도한 金尙魯나 洪啓禧와는 교류를 끊었다고 한다.
그의 충절에 대해서는 정조가 가상하다는 말을 하신 바가 있고, 고종이 ‘충성을 다했으니 포상해야 한다.’라고 하교하시고 그 자손을 등용시키라는 말을 하신 바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墓道 근처에 무덤을 쓰는 변이 일어나기도 했고, 그의 문집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三峰書堂에서는 그의 문집을 내기로 결의하였고, 이를 여러분과 함께 거행하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2월 22일에 三峰書堂에서 모임을 갖고자 하니 참석을 요청한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