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1915년 4월 15일, 李中業(1863∼1921)이 영해의 영양 南氏 지인에게 병든 자신의 근황과 문집간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자신의 병에 약제를 구해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이다.
먼저 수급자 형제와 일가의 안부를 묻고, 卄川의 풍경이 요즘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자신은 겨울 전에 설사병을 얻어 5,6개월 간 앓고 있다고 전하고, 遺文을 정리하지 못함이 한이라고 한다. 유고는 별집과 부록을 합쳐 13책인데 상대방 가문의 글은 빠진 것이 없고, 봄과 여름 사이에 付板하고자 하는데 일하는 힘이 처음에 비해 태부족임을 한탄한다. 또한 碧山 선생이 바다에 빠져 자결한 일에 대해 한번 그곳에 가서 슬픔을 표하고 싶으나 병 때문에 못하는 것이 한이라고 한다. 자신의 병에는 바다 쑥이 맞는 약재라고 하는데, 마침 채취 시기이니 노비 등을 시켜 수십 줌을 구해 石浦로 보내주면 사람을 시켜 가져올 것이라고 부탁한다.
이중업은 본관은 眞城, 자는 廣初, 소자는 桂祥, 호는 起巖이다. 李滉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資憲大夫 承旨 晩燾인데, 경술국치 후에 斷食으로 순국하였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저술로는 《기암유고》 28권 14책, 《대학정의》, 《양전합선》 등이 있다.
卄川은 영해 영양남씨 세거지인 槐柿의 입천정이며, 碧山은 경술늑약에 비분하여 동해에 걸어 들어가 자정 순국한 金道鉉(1852~1914)의 호이다. 벽산은 또한 발신자의 부친인 향산의 제자이기도 하다.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