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6월 14일, 姜鳳元이 자신이 벼슬에 나가게 된 일과 가뭄으로 인한 산골 농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전하기 위해 영해 楮谷의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
1910년 6월 14일에 姜鳳元(1847~1924)이 자신이 벼슬에 나가게 된 일과 가뭄으로 인한 산골 농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전하기 위해 영해 楮谷의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지난 번 편지에는 답장도 보내지 못했는데 또 편지를 보내 주니 생각해 주시는 정성에 감사한다 하고, 그를 통하여 소식을 알지 못해 답답하던 마음이 금방 풀린다 하였다. 이어서 이 가뭄이 심한 때에 慈堂과 亞庭[숙부]의 체후가 편안하심을 알게 되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큰 병환이 없어 다행인 가운데 뜻밖에도 벼슬에 나가게 되어 감사하다 하고, 그러나 아내의 祥期가 지나니 다만 마음이 더욱 아파 오직 슬픔을 참을 뿐이라고 하였다. 또 가뭄은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이나 백성의 괴로운 하소연이 산촌이라 더욱 심하다며 하늘이 장차 백성을 다 죽이려 해서인지 모르겠다며 한탄스러움을 표하였다.
발신자 강봉원은 本貫이 晉州이고 字가 舜來, 號가 海隱이다. 봉화군 법전면 尺谷里에 거주했으며, 寧越府使를 역임했다. 葛庵 李玄逸의 8세손 李壽嶷와 사돈 간이었으므로 이 편지의 수신자는 이수의(1840~1886)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수의는 字가 公鎭, 아버지는 淵榮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