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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만도(李晩燾)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910.4717-20160630.071425702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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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도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0
형태사항 크기: 26.6 X 36.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0년 이만도(李晩燾) 서간(書簡)
1910년 7월 20일, 이만도(李晩燾)가 부탁받은 글과 행록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이 보내준 편지에 대해 감사를 전하고 상대방의 근황을 물은 뒤 산소를 이장하는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부탁받은 묘갈명은 병이 심해져서 쓰기 어렵다고 하고, 행록 중에는 빠져 있는 이력이 많아서 대략 점으로 표시해 두었으니 살펴서 보완하여 글 솜씨가 좋은 사람에게 맡겨 다듬을 것을 권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910년 7월 20일, 李晩燾가 상대방의 편지에 감사하고 안부를 묻고 전하며, 부탁받은 글과 선대의 행록에 대해 언급한 편지
1910년 7월 20일, 李晩燾(1842∼1910)가 상대방의 편지에 감사하고 안부를 묻고 전하며, 부탁받은 글과 선대의 행록에 대해 언급한 답장편지이다.
먼저 지난해에 안부를 물어주신 것은 쓸쓸한 집에 찾아온 사람 발자국 소리와 다를 것이 없이 반가웠다 하며, 보내주신 편지에 감사를 전하였다. 또 상대방의 학문하는 근황을 묻고, 先大父 令公의 산소를 이장하는 일은 뜻했던 일을 실행하는 것이라 위로되는 마음 절실하다 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자신이 젊었을 때에 만난 先外王考 諫院公의 높은 풍범과 맑은 지조를 회상하며 칭송하고 있다. 지난 번 묘도문자를 부탁받은 일은 병이 더해져 명을 받들기 어렵다고 하고, 상대방이 말한 행록 중에 서술한 이력에 대해서는 상세히 해야 할 것이 많이 빠져서 대략 점으로 표시해 두었으니 직첩을 중심으로 상고하여 보완하고 글 솜씨가 뛰어난 사람에게 맡겨 다듬게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만도는 본관은 眞城, 자는 觀必, 호는 響山이다. 경북 예안 출신으로, 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66년(고종3) 정시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다가 병조좌랑에 제수되었다. 1910년의 한일늑약 이후 단식 자정하여 순국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0년 이만도(李晩燾) 서간(書簡)

濠村 南生員宅 回納。
某岩病生 謝候書。[手決] 謹封。

往歲惠問。無異蓬藋跫音。
姪兒今飮海上藥水不歸。又致記存。
非渠飮水。吾亦若消得飮。如復謬
以死物自居。又不答必不信矣。處此不
亦爲難乎。是歲不亦何歲。而聲又入
樹間矣。更詢
學履對序增護。
先大父令公衣履做出。凡平日見愛者。聞來
不覺下淚。況慈孫之心乎。不得吉兆不爲。
此擧情事之伸。還切仰慰耳。病狀。山
禽谷梧。猶不盡知。爲所恨者。不得爲木爲
石於覆載之間。冥然無心耳。先外王
考諫院公少日。蓋嘗得拜於謝公時。則朝廷
以廟社陵園乏祭官。故拈在外縉紳之公。一
膺香祝之後。不出門外一步地。惟與剛州朴
侍郞丈。以碁局消長夏。風儀之揭揭。操守之淸
介。尙切黙識于心者矣。前日文字之託。◘然
多辭。但賤疾近益添越。謝却筆硏已久。難
以承敎。且念無狀。以筆舌得罪於此。門內
明者所悉也。雖使不病不聽。重犯不韙之科。
旣見狀有如上者乎。惟是所示行錄中。所敍
履歷。不無可疑。多欠詳細。故略加點表。
就考其職帖錄補之。更得當世秉筆者舖
皇。則唯此病廢。未爲無助於是役也。恕諒。
勿爲强迫。是亦朋友相愛之道。其知之否。餘。不
備上。
庚戌七月二十日。病弟 李晩燾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