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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907.4717-20160630.07142570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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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중업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7
형태사항 크기: 25.4 X 37.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7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1907년 3월 3일, 이중업이 남 생원(南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선 상제(喪制) 중의 상대방 안부는 어떤지 물었고, 이어 본인과 가족의 안부를 전했다. 본인은 치통과 요통으로 신음한지 보름이 지났고, 부모님은 돌림병 때문에 거처를 옮겨 안부를 묻기가 이전보다 어려우며, 아들은 먼 길 떠났는데 돌아오는 날짜가 미루어졌고, 국망봉(國望峰) 묘소에는 투장의 변고가 있다고 했다. 추신에 선조의 행장을 문집의 원집에 넣자고 했으니, 담제를 지낸 이후에 간역소에 가서 물어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편지를 쓴 이유이기도 하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907년 3월 3일, 李中業이 南 生員에게 선조의 행장을 문집의 원집에 넣자고 했으니, 담제를 지낸 이후에 간역소에 가서 물어보라는 내용의 편지
1907년 3월 3일, 李中業(1863∼1921)이 南 生員에게 선조의 행장을 문집의 원집에 넣자고 했으니, 담제를 지낸 이후에 간역소에 가서 물어보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이중업은 편지 예식을 생략하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어느덧 선부군의 담제가 이르렀는데, 순수한 효심에 텅 빈 듯한 슬픔을 어떻게 견디며 있는지 물었다. 이러한 때에 직접 안부를 묻지 못하고, 인편이 끊어진 것도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형제분의 喪制 중의 체리가 슬픔으로 손상됨이 없고, 식구들도 돌림병이 나아서 혹시 제사를 지내는 절차에 구애됨이 없는지도 물었다. 이중업은 슬프고 그리운 마음이 절실하다고 했다.
다음은 본인과 가족의 소식을 전했다. 부모님 계신 곳이 근래에 평안하다는 소식을 받았지만 이웃에 돌림병에 대한 경계가 많은 까닭으로 某嵓 선영에 옮겨 거처하고 있다고 했다. 땅은 더욱 깊고 길은 더욱 험하여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어렵다고 했다. 본인은 치통과 복통으로 신음한지 보름이 지났고, 아들은 긴요하지 않은 일로 먼 곳에 길을 떠났는데 돌아오는 날짜가 미루어졌다고 했다. 國望峰 선조의 유적은 400년 동안 수호한 곳인데, 갑자기 偸埋하는 변고가 있으니 이 또한 時變에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外警은 또 그칠 만한 기약이 없으니, 가지가지 걱정스러움을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했다.
이중업은 상대방이 다시 만들어준 은혜를 입었지만 전후로 일이 있어서 저버린 것이 한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지금 가려고 했으나 병과 잡된 일에 얽매여 뜻을 이루지 못하니, 죄스럽고 한스러움이 끝이 없다고 했다. 종제가 한번 가는 것도 이미 늦었지만, 건강하지 않은 자가 험한 세상에 홀로 가니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편지에는 추록이 있는데 이중업이 편지를 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상대방 선조의 행장은 본인이 썼는데, 원집에 넣고 싶으니, 상대방에게 담제를 지낸 뒤에 刊所에 가서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모두가 좋아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으니 외부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중업의 본관은 眞城, 호는 起巖이다. 아버지는 1910년 자정 순국한 響山 李晩燾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부친과 함께 예안의 선성의진에 가담했고, 1919김창숙이 주도한 ‘제1차 유림단 의거’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1920년 11월, 독립청원서를 孫文·吳佩孚 등 중국의 유력 인사에게 보내려고 시도하다 출국 직전 사망했다.
수신자는 영해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이다. 영남의 사족은 조상의 문집 간행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사환보다는 학문을 우선시하고 조상 선양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문집 간행은 공의에 기초하기 때문에 사족 사이의 협조가 필요하며, 간행된 문집의 공유를 통해 사족 사이의 관계망을 지속해 나가기도 했다. 이 편지는 문집 간행과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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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07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南生員 生員 禫制前
狀上。【省式謹封】

中業省式白。日月不留。
先府君珓期奄届。伏惟
純孝慨廓之痛。何以堪居。此時寒溫不須仰問。
而便斷已久。未審
棣牀制體。莫有疚損。廡葉淸淨。倘無碍於
將事之節否。伏切區區悲溯之至。中業。峽音近承二
字。而以隣比多戒。移寓於某嵓楸下。地益深而路
益險。省問比前益難。賤身。以齒痛與蛔腹。吟呻
已過一望。兒子作不緊遠地之行。歸期尙稽。國望
先躅。是四百年守護之地。而忽有偸埋之變。此亦關
於時變。外警且無可熄之期。色色愁惱。無以仰
浼耳。中業。於
座下。荷再造之恩。而前後有事。辜負不一。今於準
擬之餘。又以病故與冗掣。未得遂意。罪恨何極。從
弟一行。亦已晩矣。而不健者。險世單行。實所關慮也。餘
不備。伏惟
制察。狀上。
丁未三月初三日。弟 李中業 狀上。

尊先狀文。中業書之。武雍言之。引入於元集。過禫
後上來。一問役所。如何。貴鄕內多難每悅處。勿使外人
知之。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