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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907.4717-20160630.0714257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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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중업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7
형태사항 크기: 24.7 X 36.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7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1907년 1월 28일, 이중업(李中業)이 유고를 간행하는 일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 부친의 종상(終祥)에 참석하지 못한 일에 대해 사죄하고 보내준 편지를 통해 상대방 형제의 안부를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이어서 조섭하며 지내는 자신의 근황과 오랜 병을 앓고 있는 막내숙부의 소식을 전하고, 사문의 유고를 간행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러 간행소에 가려하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선왕고(先王考)의 묘갈문 초안과 안본(案本)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907년 1월 28일, 李中業이 師門의 遺稿를 간행하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07년 1월 28일, 李中業(1863∼1921)이 師門의 遺稿를 간행하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집안 일로 先府君의 終祥에 참석하지 못했음을 사죄하고 상대방이 보낸 편지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또한 상중의 형제분들의 체후와 범절이 좋고 사위를 맞이함이 흡족함을 알아 매우 위로된다고 하고, 자신은 산골짜기 집안에서 조섭하는 정황이 갈수록 어렵고 季父는 오랜 병으로 손상됨이 심해져 애태우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어서 師門의 遺稿를 간행하는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몸소 刊所로 가서 의논하고자 하나 아침에 저녁 일을 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음을 전하고 있다. 추신으로 선왕고의 갈문 초안을 보내니 보고 돌려 줄 것과 안본을 말한 대로 돌려보낸다 하고 있다.
이중업은 본관은 眞城, 자는 廣初, 소자는 桂祥, 호는 起巖이다. 李滉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資憲大夫 承旨 晩燾인데, 경술국치 후에 斷食으로 순국하였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저술로는 《기암유고》 28권 14책, 《대학정의》, 《양전합선》 등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7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省式白。日月如流。
先府君終祥奄過。伏惟
純孝慨廓之痛。何以堪居。郡至之席。
準擬扶服。竟以私門事變。未得遂
意。辜負幽明。悲愧萬萬。自分其見絶
僉孝矣。今者不錄罪過。先垂長牋。寄
意勤厚。玆非兄座。何以有此。包荒之量。
果非小腹所能窺側也。感恧之深。無以仰
謝。矧伏審俯就來
制中棣體節連衛支嗇。延壻叶望。
供得滋況。伏切區區慰幸之至。弟。峽庭將
攝。去益難適。季父疚損轉甚。身率亦多
不健。煎惱何喩。兼以宗門橫厄。羞憤
欲死耳。師門遺稿。念間始付板。而
尊先狀。又屢經校勘。存拔未能詳知。
來使轉送。探問於景立。其答云。入於
續集。而同時刊布。旣無先後。而同時則原續何關。又云將
與範初。更議引入於原集。業則奉閱已久。今不記得。其本
之何如。原續之間。不敢遙斷其當否。第
當於日後躬往刊所。更爲奉閱。以聽
僉論計。過禫後。趁爲上來。則可
及寫本之前。諒處如何。雜著以
下。姑未繕寫云耳。
禫事將以近日擧
行耶。將欲追贖宿
逋。而未知果能無
障碍於朝不謀夕
之世也。餘。來人晨發。
呼燈潦草。不備。伏
惟制察。
丁未元月卄八夕。弟 李中業 拜拜。
先王考令公碣文艸付呈。未知果合於用耶。
是艸本也。覽後還送。當精書以上矣。按本
依敎幷呈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