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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904.4717-20160630.07142570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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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도화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작성시기 1904
형태사항 크기: 23.1 X 37.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4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1904년 8월 12일, 김도화(金道和)가 서로 친했던 정의를 생각하여 상대방이 부탁한 행장(行狀)을 틈을 내어 작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편지이다. 먼저 그리운 마음과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노년에 아내 잃은 슬픔과 텅 빈 마음으로 외롭다고 했다. 부탁한 행장은 문장의 힘이 없어 감당할 바가 아니지만, 함께 공부한 정의가 남아 있어 사양할 수 없다고 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904년 8월 12일, 金道和가 서로 친했던 정의를 생각하여 상대방이 부탁한 행장을 틈을 내어 작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편지
1904년 8월 12일에 金道和(1825∼1912)가 서로 친했던 정의를 생각하여 상대방이 부탁한 행장을 틈을 내어 작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편지이다.
김도화는 먼저 안부 인사를 전했다. 지난해에 만나 뵈어 종종 그리운 마음이 鉅鹿 아래에 있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뜻밖에 상대방 아들이 어렵게 멀리서 찾아와 주고 아울러 보내온 편지가 진중하니, 어떻게 사례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늘한 가운데 편안히 계시는 일상생활이 계절에 맞게 신의 도움을 받고 가족들도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아 더욱 위로됨이 절절하다고 했다. 김도화는 노년에 아내를 잃은 것이 몹시 슬프고 더욱이 기년복을 이미 벗어 마음이 텅 빈 것 같음이 더욱 심하여 다만 외롭게 혼자 남은 탄식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본론에서는 상대방이 부탁한 행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돌아가신 영감의 행장은 당세 작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잘못한 부탁이 멀리까지 미쳤다고 하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돌아보건대, 문장이 힘이 없고 말도 가벼우니 어떻게 이 부탁을 감당하겠냐만, 同門의 정의가 마음에 남아 있어 잊을 수 없으며, 상대방이 부탁한 것은 또한 옛것을 강론하며 서로 친하게 지냈던 정의에서 나온 것이니, 문장력이 없다고 해서 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류도화는 우선 이것을 받아두고 틈을 내어 못난 솜씨로 幽明을 저버리지 않을 계획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다만 성취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모른다고 했다. 나머지는 允契가 말로 전할 것이라고 하면서 편지를 맺었다.
발신자 김도화의 본관은 의성, 자는 達民, 호는 拓菴이다. 그는 안동 출신으로, 柳致明의 문하에 출입했다. 1893년 遺逸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안동 유림 대표로 활약했으며, 다음해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태봉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노환으로 은거하면서도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를 맞아 상소와 격문 등을 통해 일제에 항거하였다. 문집으로 『척암집』이 전한다.
김도화는 자신의 선조 梅隱 金安繼(1556~1599)가 남흥수의 8대조 南靖邦(1557~1592)와 함께 惟一齋 金彦璣(1520~1588)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여 맺어진 두 집안의 世誼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김도화류치명의 문인이었는데, 수신자는 알 수 없지만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 가운데 류치명에게 수학한 인물이 있다. 편지로 미루어 류치명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우의를 돈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당시 영양 남씨가 영남의 명유였던 자신에게 문자를 부탁해오자 정성껏 글을 써주었던 것이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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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04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濠村 經案 回納。
龜村 謹謝狀。謹封。

稠海中。奉接
淸眄。已屬隔年事。種種瞻耿。未嘗不在
鉅鹿之下矣。匪意。
賢器跋涉遠顧。兼致
辱惠珍重。旣喜典刑之攸在。且感
眷意之勤縟。不知所以爲謝也。因審墟凉。
泰履起靖。對序珍相。芘致均頔。尤庸慰仰
切切。病弟。白首盆慽。不足悲酸。而朞制已
闋。寥廓益甚。第有孤寄之歎而已。奈何。
先令監善狀。此是當世作者之事。而
謬囑遠及。自顧耄荒。筆萎言輕。何足以
堪是寄。而顧惟同門暌晤之恨。留在心曲。每
有不能忘者。今此
盛屬。亦出於講舊相與之誼。則不敢以不文。終
辭。姑此受置。偸暇血斲。圖所以不負幽明之計。
未知能成就否耳。餘。在允契口達。不宣謝。伏惟
雅照。
甲辰 八月 十二日。病弟 金道和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