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5월 26일, 李中業이 시사를 걱정하고 자신의 독서 상황을 전한 편지
1903년 5월 26일, 李中業(1863∼1921)이 시사를 걱정하고 자신의 독서 상황을 전한 편지이다.
먼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소식이 막혀 그리워하던 차에 毅可兄을 통해 대체로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고 상대방과 그 주변의 안부와 큰 흉년에 궁색함은 없는지 묻고 있다.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允初[李中善]가 상대방이 준 약을 복용하고 효험이 있다고 하고, 花山[안동부의 다른 이름]의 상황은 장차 변고가 생길 듯 하며, 서울에서 내려온 경보는 매우 패악하고 급박한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문이 다 그러하니 국가의 대운이 걸린 일이라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하였다. 또한 金溪[검제]에 내린 임금의 恩命은 이런 세태에 비추어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너무 이른 일이라 나이가 들고 학문의 진전이 있기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하고, 근래에 자신의 집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전일에 비하여 조금 달라진 듯하나 아직 사나운 기상이 있음을 근심하였다. 이어서 혹 그 사람이 어른의 실행도 반드시 다 옳지는 못하다 생각할까 염려되어 자신이 《退書節要》를 가져다 매일 두어 쪽씩 읽는데 심지가 차분해지고 의미가 親切함을 깨달아 근심을 잊기에 충분하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상대방과 그 형제들 같은 훌륭한 벗에게 까닭 없이 손해되는 벗이 될 것 같아 매우 한탄스럽다고 하고 있다. 금계에 내린 은명이란 당시 학봉 종손 金龍煥(1887~1946)에게 벼슬이 내린 일로 추정된다. 김용환은 발신자 이중업의 사위이다.
이중업은 본관은 眞城, 자는 廣初, 소자는 桂祥, 호는 起巖이다. 李滉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資憲大夫 承旨 晩燾인데, 경술국치 후에 斷食으로 순국하였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저술로는 《기암유고》 28권 14책, 《대학정의》, 《양전합선》 등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