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2월 17일, 姜鳳元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관직 생활하는 무료한 심정을 알리는 등 근황을 전하기 위해 楮谷의 사돈에게 보낸 편지
1903년 12월 17일에 姜鳳元(1847~1924)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관직 생활하는 무료한 심정을 알리는 등 근황을 전하기 위해 楮谷의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國喪으로 온 나라가 애통해 하는 시기라 집에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관아에서 인사도 한번 나누지 못하여 서운하고 안타깝다고 적고, 섣달 추위 속에 萱堂의 康寧하심과 어른을 모시는 수신자의 안부와 숙부님의 안부를 차례로 묻고 있다. 발급자는 관아에서 지낸지 2년 동안 갈수록 괴로워, 노닐며 시를 읊조리는 것으로 소일하지만 그 또한 무의미하여 심회를 쏟을 곳은 오직 푸른 강물뿐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이 예전처럼 강녕하시니 다행이라고 하고, 울적한 심사를 달래보려고 가을에 며느리를 데리고 왔으나 집안 일 때문에 돌려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지난겨울 돌림병을 겪은 뒤에 늘 건강이 좋지 못하여 고민되는 마음을 다 형상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서찰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이 서찰에서 언급한 國喪은 1903년 11월에 있었던 憲宗의 계비 孝定王后 洪氏(1831~1903)의 국상을 말한다.
발급자 강봉원은 봉화 法田에 살았다. 陶隱 姜恪의 후손으로 부친은 桂下 姜濟(1826~1919)이다. 字는 舜來, 호는 海隱이다. 참봉과 寧越府使를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