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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류석락(柳錫洛) 외 3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98.4717-20160630.071425702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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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석락, 류필영, 류동식, 류창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작성시기 1898
형태사항 크기: 25.6 X 35.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8년 류석락(柳錫洛) 외 3인 서간(書簡)
1898년 9월 10일, 안동 임하 삼산(三山)류석락(柳錫洛) 외 3인이 영해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에게 간행 문집을 보내면서 쓴 편지이다. 원래 간행 문집을 세 질을 보내야 하지만 간행본이 많지 않아 두 질만 보내고, 내년 봄에 다시 인쇄하여 보낼 것이라고 약속하며 미안한 마음도 함께 전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98년 9월 10일, 안동 임하 三山柳錫洛 외 3인이 영해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에게 간행 문집을 보내면서 쓴 편지
1898년 9월 10일에 안동 임하 三山柳錫洛 외 3인이 영해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에게 간행 문집을 보내면서 쓴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간략하다. 바다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는 때를 기약할 수 없으니, 그리운 마음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9월에 상대방의 건강과 생활은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 물었고, 이후 자신들은 못난 몰골을 각각 보존하여 족히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했다.
다만 문집을 간행한 것은 평소의 바람에 부응한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 마을에는 세 질을 보내야 하지만, 간행본이 많지 않아 원근의 요구에 응하는 것에 유감이 있다고 했다. 우선 두질만 보내니 돌려 본다면 내년 봄에 다시 인쇄하여 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거듭 용서하는 마음을 드러내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발신자는 柳錫洛 · 柳必永(1841~1924) · 柳東植 · 柳昌植(1858~1912) 등이다. 이들 가운데 류창식의 자는 啓八, 호는 萬山, 안동부 임하면 三山에 거주했다. 三山 柳正源의 6대 주손이며, 西山 金興洛, 拓菴 金道和의 문하에 출입했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청량산에서 李中業 · 李相龍 · 柳寅植 등과 창의했다. 金東三 · 柳寅植 등과 신교육을 보급하기 위해 영남 최초 중등학교인 협동학교를 세우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삼산의 전주 류씨와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는 퇴계학파 내에서 학봉계에 속하며 오랫동안 학문적인 교류와 더불어 중첩적인 혼인 관계망을 형성했다. 이들은 서로의 문하에 출입하거나, 文子授受 혹은 간행된 문집의 공유 등을 통해 지적 권력을 지속·확대해 나갔다. 이 편지는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8년 류석락(柳錫洛) 외 3인 서간(書簡)

槐市 僉座下 執事。
三峴 柳弟等 謹候狀。

海天遙廓。奉際未期。瞻
詠可已。伏惟楓辰。
僉體動止神相。仰遡不任。
弟等。冗狀各保。無足仰溷。而
惟師集就刊。粗副宿心耳。
仁里當送三帙。而印本無
多。遠近酬應。極有餘憾。只
以二件呈上。幸
僉座輪覽。則明春更印。
當先送。暫恕恭望。餘。不
備。伏惟
僉照下。
戊戌 九月 旬日。弟 柳錫洛 柳必永 柳東植 柳昌植 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