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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광로(李光魯) 외 7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97.4723-20160630.0114257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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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광로, 이원, 이승필, 이승원, 이경로, 이도후, 이승복, 행정 회중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27.8 X 45.6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갈암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7년 이광로(李光魯) 외 7인 서간(書簡)
1897년 10월 23일에 이광로 외 7인이 행정(杏亭)의 모임에 보낸 편지이다. 갈암 이현일 선생의 묘소에 비석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도리 상 마땅한 일이라 하였다. 그러나 비석의 전면에 다만 일곱 글자만 쓴 데 대해서 선생의 높은 덕에 비해 서글픈 심정이라고 하였다. 겨울 막바지의 추위 속에 큰일을 치르는 상대측 사람들에 대해 염려하는 심정도 표현하였다. 편지를 보내는 자신들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힘을 보태야 하지만, 더러는 병들고 더러는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고, 젊은이 한 사람과 부조로 돈 다섯 꿰미만 보낸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97년 10월 23일, 李光魯 외 7인이 葛庵 선생의 墓碣을 세우는 자리에 몸소 참석하지 못하고 年少者 한 사람과 부조만 보내는 것에 대하여 송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杏亭의 회중으로 보낸 편지
1897년 10월 23일에 李光魯, 李源 등이 葛庵 선생의 墓碣을 세우는 자리에 몸소 참석하지 못하고 年少者 한 사람과 부조만 보내는 것에 대하여 송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杏亭의 회중으로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 번 갈암 선생의 묘도에 비석을 세운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는 우리 유림이 높이고 지켜야 할 도리 상 마땅한 일이라 하였다. 그러나 비석의 전면에 다만 7자만 쓴 데 대하여서는, 人爵의 있고 없음이 선생의 높은 덕에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나, 우리 유림의 침통한 심정은 지극하다 하였다. 이어서 겨울 막바지의 추위 속에 대사를 추진해야 하니 마음이 많이 쓰일 것을 염려하고, 자신들도 마땅히 그 자리에서 힘을 다해야 하나, 모두 쇠병에 신음하거나 용무에 골몰하여 젊은 사람 하나만 막중한 자리에 참석하도록 하니 초청한 뜻을 저버린 것일까 두렵다 하고 부조 5꿰미를 보낸다는 말을 덧붙였다.
李光魯, 李源, 李承弼, 李承源, 李敬魯, 李道厚, 李承復 등 7명이 연명하였다.
杏亭은 갈암의 묘소가 있는 영해 창수면 인량리의 소지명이다. 본래의 묘소는 안동 금소리 금양 북쪽 기슭에 있었는데, 1706년 안동 남쪽 신사동 언덕으로 옮겼다가, 1832년(순조32)에 다시 영해 서쪽 인량리의 杏亭 巳向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7년 이광로(李光魯) 외 7인 서간(書簡)

杏亭 會中 僉執事。
元覺土洞 李生 謹拜狀。
同壤頓阻。居常瞻頌。頃伏承
葛庵先生墓道展告之期。此斯文幾
年未遑之事。尊衛之道。合做這大事。
而仄聞前面只書七字云。嘻。人爵之
與奪。有無於
先生。無所加損。而爲吾林沈鬱之忱。則極
矣。豈意海東程朱之黨。果若是不競
耶。伏惟冬抄
僉尊體連衛萬重。寒序幹事。想多
費神。觀遙爲區區不任。生等。其在事從
之道。當竭蹶於禮執澆埽之末。而顧非
衰病。則有故也。祗遣一少。敢叨重席。恐
負速意。而所謂五緡物。尤無足稱伊
耳。餘。祝
展禮利成。不備。伏惟
僉下照。謹拜候狀。
丁酉 十月 二十三日。李光魯 李源 李承弼 李承源 李敬魯 李道厚 李承復 等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