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9월 20일, 柳斗永 외 2인이 상대방이 부탁한 것을 내년 봄에 인쇄하여 보내주겠다며 보내는 편지
1897년 9월 20일, 柳斗永 외 2인이 상대방이 부탁한 것을 내년 봄에 인쇄하여 보내주겠다며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는 상대방이 지난달에 보내준 『瀛隱遺集』을 잘 받았다는 인사로 시작된다. 이어 聯書가 먼 지방에서 와서 저의 집 문집 간행에 대하여 물어주었다고 했다. 여러 座下께서 먼저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했는데, 돌아갈 때 답례를 부치지 못하여 부끄럽다고 했다. 그 후로 가을 기운이 점점 높아지는데, 상대방의 체후와 생활은 신명의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되니, 그리운 마음 가눌 길이 없다고 했다.
류두영 등은 못난 모습을 각자 보전하니,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다. 상자에 있는 책은 미처 정리를 못하다가 비로소 인쇄를 마쳤으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고 했다. 다만 전사를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교정하지 못하여 두렵다고 했다. 상대방이 말씀하신 것은 마땅히 부응해야 하지만, 인쇄할 시기가 내년 봄에 있으니, 그때 필요하다면 믿을만한 인편을 얻어서 준다고 했다. 추록에 돈 한 꿰미를 준다고 했다.
편지 내용의 『瀛隱遺集』은 영해 괴시마을 南公壽(1793~1875)의 유집이다. 남공수는 류치명·이경재·남성원 등 당대 석학들과 교유했다.
발신자 가운데 柳必永(1841∼1924)의 자는 景達, 호는 西坡이다. 柳致明의 문인이고, 權璉·李晩慤·金興洛·金道和 등과 교유하였다. 1880년(고종 17) 영남만인소 때는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9년 金昌淑이 주도한 파리장서사건 때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