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10월 22일, 柳建鎬 외 2인이 영해 인량리 杏亭의 葛庵선생 묘소에 竪碣을 행할 때 그 일을 주관하는 執事 여러분에게 보낸 편지
1897년 10월 22일에 柳建鎬(1826~1903), 柳敬鎬, 柳述鎬가 영해 인량리 杏亭의 葛庵선생 묘소에 竪碣을 행할 때 그 일을 주관하는 執事 여러분에게 보낸 연명 편지이다.
먼저 겨울철에 여러분의 건강이 한결같이 좋으신지 묻고, 선생의 묘소에 비석을 세우는 일이 다 되었음을 들었다며, 이는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하였던 일이 자손의 수고로 처음 이루어진 것이라 치하하고, 한 조각 비석이 묘소를 빛나게 할 것이니 斯文의 경사라고 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은 본디 後學이자 外裔로서 공적으로는 스승으로 받들고 사적으로는 조상으로 섬기는 처지이니, 告由의 행사에 다른 사람들보다 뒤져서는 안 될 것인데, 혹 질병으로 혹 사사로운 忌祭로, 일 년이나 별렀던 일을 파의하게 되었다 하였다.
앞서 致崇 형을 만나서 한스러운 뜻을 자세히 말하였으나 사문의 큰일을 분담하지 못한 것이니 스스로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하였다. 이에 젊은 이 몇 명을 보내어 行禮의 말석에 참여하게 하려 하지만 塞責일 뿐이니 어찌 여러 長老들께서 용서하기를 바라겠느냐 하고, 오직 큰 행사를 잘 마치기를 축원한다고 하였다. 枕澗亭에서 돈 2냥을 보낸다는 말을 추신으로 덧붙였는데, 枕澗亭은 庸窩 柳升鉉(1680~1746)이 지은 정자이다. 본래 안동 水谷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임동면 일대가 수몰되게 되자 지금의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로 옮겼다.
류건호는 본관은 全州, 字는 彛執, 號는 石下이다. 부친은 柳致任이며,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안동의 박실[朴谷]에 살았고, 저서로 『石下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