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2월 20일, 金承洛 본인과 伯父의 건강 상태를 알리고, 상대방 아들의 방문과 선물에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
1894년 2월 20일, 金承洛(1835~1899) 본인과 伯父의 건강 상태를 알리고, 상대방 아들의 방문과 선물에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이다.
편지는 안부로 시작된다. 김승락은 만났다 헤어진 지 한 해가 지났는데 오래도록 소식이 막혔으니, 동쪽 바다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실하다고 했다. 근래에 상대방 아들이 방문하여 보내준 편지를 받아 펼쳐보니 예전처럼 마치 무릎을 맞대고 나란히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후련한 마음이 참으로 감명스럽다고 했다. 하물며 봄이 한창인데 부모님 모시는 체후가 좋고, 밝은 창과 빛나는 책상에서 玩繹하는 공부는 반드시 참다운 경지에 많이 나아가고, 또 아침저녁으로 바닷가와 卄川 사이에서 정신과 기운을 수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큰 복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움을 그치지 않게 하니, 위로되고 경하하는 마음이 끝이 없다고 했다.
김승락 본인은 우연히 눈병으로 한 달이 넘도록 보지 못하다가 근래에 겨우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다 낫지 않았으며, 쇠한 모습은 속이기 어려우니 스스로 가련한들 어찌하겠는가라고 한탄했다. 伯父의 안부는 병이 크게 더치는 것은 면했지만, 마을에 간혹 의심스러운 병[돌림병]이 있으니 이것이 관심거리가 될 따름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아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방문하고, 여러 번 상대방이 보내준 선물을 받으니 더욱 감사하고 기쁘다고 했다. 그 의표와 보취를 살펴보건대, 묻지 않아도 법가의 모범 중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장래에 그 진취를 기대할만하다고 했다. 김승락이 지난번에 한번 간 것은 주마간산과 다름없어 돌아온 뒤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득하여 꿈과 같다고 했다. 조만간 한번 가서 大海를 구경하지 못한 소원을 흡족하게 이루고자 하는데, 그때 개의치 않고 지팡이를 짚고 옷자락을 날리며 유람하자고 했다. 나머지 사연은 남겨두고 줄이니, 예로 살펴봐 달라고 하면서 편지를 끝냈다.
편지 본문의 ‘雲樹’는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말로, 杜甫의 詩 「春日憶李白」 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엔 저문 날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한 데서 유래하였다.
발신자 김승락의 본관은 義城, 자는 士欽, 호는 屛西이다. 金鎭華의 아들이고, 김흥락의 아우이다. 1891년(고종 21) 소과에 합격했다. 수신자는 드러나지 않지만 편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영해 호지마을의 영양 남씨이다. 의성 김씨와 영양 남씨는 퇴계학파 내에서 학봉계로 학문적 입장을 같이 하며, 조선후기 같은 스승의 문하에 출입하고 중첩 혼인을 하는 가운데 깊은 교유 관계를 지속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