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5월 25일, 柳道性 등이 家廟 賜祭에 부의를 보낸 것에 대해 사례하는 편지
1892년 5월 25일, 柳道性(1823∼1906) 등이 家廟 賜祭에 부의를 보낸 것에 대해 사례하는 편지이다.
편지는 가묘 사제에 대한 감사편지로 공식적이며 간략하다. 내용을 보면, 먼저 가묘 사제에 상대방이 연명 편지를 주시고 부의도 많이 주셨으니, 감사하고 송구스런 마음이 번갈아 일어난다고 했다. 5월에 상대방의 체후와 일상생활이 모두 편안하다고 하니 우러러 위로되는 마음을 견딜 수 가 없다고 했다. 류도성 등은 임금께서 보낸 사신을 공경히 맞아 대례를 잘 마쳤으니 서글프고도 다행스럽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가묘 사제는 임진왜란 5주갑[300년]을 추모하기 위해 고종이 류성룡 가묘에 치제한 것을 의미한다. 『승정원일기』138책 고종29년 4월 7일 기사를 보면, 이 때 이항복·윤두수·정곤수·권율 등에도 승지를 보내 치제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60년마다 임진왜란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활동한 공신들을 추모했다. 시호를 내리고, 봉사손이 끊어지지 않도록 했으며 祠宇나 致祭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다른 문중에서 부조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에 후손들이 연명하여 사례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발신자는 류성룡의 후예로, 류도성의 자는 善汝이고, 호는 石湖이다. 조부는 柳台佐이고 부친은 柳希睦이며 생부는 柳祈睦이다. 부인은 김두흠의 딸 풍산 김씨이다. 1905년(광무 9) 단발령이 내려지자 金興洛‧柳止鎬‧金道和‧柳芝榮 등과 창의를 결의했으며, 1906년(광무 10) 1차·2차 안동의진에 참여했다. 류도휘(1826∼1897)의 자는 茹卿이고, 호는 石皐이다. 부친은 柳義睦이며, 1851년(철종 2) 장원급제한 이후 춘추수찬관‧우승지 등을 거쳐 경연참찬관을 역임했다. 柳道夔(1830~?)의 자는 章一이고, 1864년 진사에 합격했으며, 縣監·都正 등을 역임했다. 柳芝榮(1828∼1896)의 자는 秀翁이고, 호는 志山이다. 조부는 柳致睦이고, 부친은 柳道鳳이다. 1857년(철종 8) 문과 급제하여 안동부사‧우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했다. 柳時萬(1862~1933)의 자는 元一이고, 1910년대 초반 풍기광복단‧광복회 등에 가담하여 활동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