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0월 4일, 南興壽가 거듭된 풍수해를 입어 곤란한 자신의 처지와 집안 사정을 전하고, 이미 약조한 先亭記文을 재차 부탁하는 편지
1891년 10월 4일, 南興壽(1813~1899)가 수급자 미상에게 거듭된 풍수해를 입어 곤란한 자신의 처지와 집안 사정을 전하고, 이미 약조한 先亭記文을 재차 부탁하는 편지이다.
서두에서 상대방 집안의 안부를 정중히 묻고 자신은 여러 차례 풍우를 겪어 곤궁한 처지를 탄식하고 있다. 농사는 유래가 없던 재난으로 손해가 거듭되어 마침내 썩는 손해에 그쳤다고 하면서, 현재 상황이 병신년 재해에 버금간다고 참상을 전한다. 이미 약조한 先亭記文이 이미 문장이 이루어졌을 텐데 가서 받아오지 못한 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돌아오는 인편에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남흥수는 본관은 英陽이고 자는 稚孺, 호는 濠隱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았으며, 遺集이 남아 있다.
수급자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卄川亭의 기문을 부탁할 정도의 명망있는 老儒로서, ‘1890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의 내용과 연결해서 볼 때 西山 金興洛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卄川亭을 다시 중축하는 기문을 재차 부탁하면서 영해의 농사상황과 재해 등 세세한 지역정보까지 공유하는 영남 양반 사회의 교유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