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2월 2일, 南有鏞이 상대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자신의 다리 병은 溫泉을 다녀온 뒤에 차도가 있으며 상대의 사위인 자신의 아들이 곧 문안차 다니러 갈 것임을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
1891년 2월 2일에 南有鏞이 상대의 근황이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의 다리 병은 溫泉을 다녀온 뒤에 차도가 있으며 상대의 사위인 자신의 아들이 곧 문안차 다니러 갈 것임을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지난 번 자신이 북쪽에서 돌아오자마자 상대가 서울로 출발하여 한 번 만나기가 이처럼 어려우니 매우 서운하던 차에, 심부름꾼 편에 보내준 편지로 사돈의 근황은 편안하고 근친 중의 며느리도 보호 아래 잘 지냄을 알았다고 하였다. 사돈 마을 부근의 여러 老兄들이 용기를 내어 科場에 들어갔다는데, 고향에서 일없이 사는 자신으로서도 마음이 흔들리어 한 편 부럽고 한 편 우습다는 말을 전하고, 또 자신이 일전에 溫泉에 간 것은 狂症을 풀기 위한 일이었으나 돌아온 후에 다리의 병이 차도가 있다고 하였다. 오늘 新婦가 보낸 선물을 받았는데 이는 상대방이 마음 쓴 것으로 짐작한다 하고 집안의 年少輩가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에 마음을 두어 장차 출발하려 하니 가소로운 일이라 하였다.
남유용은 을미년에 왜적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영해 지역에서 李壽岳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권진모, 白重述, 朴載明, 權濬模, 李鉉乙 등과 함께 의진을 결성하여 싸웠으나, 高宗의 해산령으로 해산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