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2월 5일, 李中業이 상중의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
1891년 12월 5일, 李中業(1863∼1921)이 상중의 상대방에게 보내는 답장편지이다.
먼저 답장을 했어야 하나 미루다보니 1년이나 지나서 죄스럽고 부끄럽다고 하고 섣달 추위에 조부모와 아버님의 안부와 상대방의 체후가 어떤지를 묻고 있다. 또 자신은 志業이 날로 막히고 달로 퇴보하여 쓸데없이 30년을 좀벌레처럼 보내고 있으며 작은할아버지의 조섭하시는 범절이 추위를 맞아 더욱 나빠져서 애태우고 두려운 심정을 그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또 상대방 글방의 경치가 훌륭하고 공부하는 이들은 당세의 뛰어난 자들이라고 들었다 하고 자신은 찾아 갈 길이 없어 동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하고 있다. 자신은 선묘의 가까운 곳에 두어 칸의 초가집을 갖추고자하나 흉년으로 연기하고 있다하고, 끝으로 玉山의 終祥에 대해 언급하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보낼 물건이 없어 부끄럽다 하고 있다.
이중업은 본관은 眞城, 자는 廣初, 소자는 桂祥, 호는 起巖이다. 李滉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資憲大夫 承旨 晩燾인데, 경술국치 후에 斷食으로 순국하였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저술로는 《기암유고》 28권 14책, 《대학정의》, 《양전합선》 등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