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10월29일, 南興壽가 金興洛에게 자신의 선조가 세웠던 舊亭을 중축하면서 기문을 부탁하는 편지
1890년 10월29일, 南興壽(1813~1899)가 金興洛에게 자신의 선조가 세웠던 舊亭을 중축하면서 기문을 부탁하는 편지이다.
일찍이 종질이 인사를 드릴 때 자기의 이름을 알려드렸다고 인사를 하고 자신의 궁벽한 처지를 소개한다. 자신의 五世祖의 행장은 이미 허락을 해 주시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숙종 경신년에 낙향하여 정자를 세운 행장을 약술한다. 약간이나마 남았던 선조의 유적이 흩어져 민멸되기에 이르러 다시 정자를 세우려 하는데 그 뜻을 가상히 여겨 글을 써 준다면 대대로 후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부탁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오세조라 일컬은 사람은 南鵬翼(1641∼1687) 으로 자는 子擧, 호는 卄川 또는 晦叟이다. 증축한 구정은 바로 이 어른의 卄川亭이다.
남흥수는 본관은 英陽이고 자는 稚孺, 호는 濠隱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았으며, 遺集이 남아 있다.
수급자는 피봉에 金持平으로 되어 있어 사헌부지평을 제수 받았던 金興洛(1827∼1899)으로 추정된다. 김흥락은 조선 말기의 대유학자로 본관은 義城, 자는 繼孟, 호는 西山이다. 안동 출신으로 鶴峰 金誠一의 胄孫이다.
南有鏞은 남흥수의 從姪로 자는 汝玉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