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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90.4777-20160630.071425703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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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작성시기 1890
형태사항 크기: 20.7 X 37.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0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
1890년 10월29일, 남흥수(南興壽)가 기문을 부탁하기 위해 김흥락(金興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종질이 인사드릴 때 자기의 이름을 알려드렸다고 하면서, 자신의 선조가 숙종 경신년에 고향에 돌아와 정자를 세운 이력을 약술하였다. 이제 선조가 세웠던 정자를 다시 세우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글을 써준다면 후손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기문을 써주기를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90년 10월29일, 南興壽金興洛에게 자신의 선조가 세웠던 舊亭을 중축하면서 기문을 부탁하는 편지
1890년 10월29일, 南興壽(1813~1899)가 金興洛에게 자신의 선조가 세웠던 舊亭을 중축하면서 기문을 부탁하는 편지이다.
일찍이 종질이 인사를 드릴 때 자기의 이름을 알려드렸다고 인사를 하고 자신의 궁벽한 처지를 소개한다. 자신의 五世祖의 행장은 이미 허락을 해 주시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숙종 경신년에 낙향하여 정자를 세운 행장을 약술한다. 약간이나마 남았던 선조의 유적이 흩어져 민멸되기에 이르러 다시 정자를 세우려 하는데 그 뜻을 가상히 여겨 글을 써 준다면 대대로 후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부탁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의 오세조라 일컬은 사람은 南鵬翼(1641∼1687) 으로 자는 子擧, 호는 卄川 또는 晦叟이다. 증축한 구정은 바로 이 어른의 卄川亭이다.
남흥수는 본관은 英陽이고 자는 稚孺, 호는 濠隱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았으며, 遺集이 남아 있다.
수급자는 피봉에 金持平으로 되어 있어 사헌부지평을 제수 받았던 金興洛(1827∼1899)으로 추정된다. 김흥락은 조선 말기의 대유학자로 본관은 義城, 자는 繼孟, 호는 西山이다. 안동 출신으로 鶴峰 金誠一의 胄孫이다.
南有鏞남흥수의 從姪로 자는 汝玉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0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

謹拜候狀。
金持平 經几下 執事。

曾於從姪有鏞晉拜時。自通賤名於軒下。雖緣
衰懶。未克續候。私心傾嚮。非復昔日。不審肇夏(冬令)
燕養體候康福。溯仰區區。興壽。徒然久寄。殘悴日
甚。且無分於師友。曾所相從之某某諸公。次第凋謝。今
於尊座。未有雅面。而猶不敢自外。冒沒仰陳私悃。
旋切縮然耳。興壽。五世祖紀行之狀。旣蒙俯諾。
不必更煩。然第私家家世微弱。以拙約自守。故先祖暫出
世也。適値
明陵庚申。時事一變。搆亭退閑。不久棄世。繼又喪亂。如干咳
唾。盡爲蠹魚之食。泯泯無徵。勢固然矣。不肖輩近
才重築舊亭。旁搜遺蹟。所以有今日仰控者也。其
事差晩。其情可矜。苟得大君子發揮文字。以
闡其幽潛。則豈非孱孫百世之感幸耶。回示早
晏。惟在尊意如何。更不敢仰達耳。花梱瓢溪有事。起送從孫兒。拜謁高門。以聽進退之命。惟在盛敎如何耳。竊願爲吾
黨加護。以慰瞻仰。眼眵手澁。不宣。伏惟
尊察。謹候狀。
庚寅十月二十九日。弟 南興壽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