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9월 3일, 姜鳳元이 안부를 묻고 자신의 병세를 전한 후 제사에 참사하지 못한 데 대하여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內行을 데려올 일을 의논하기 위하여 사돈에게 보낸 편지
1888년 9월 3일에 姜鳳元(1847~1924)이 안부를 묻고 자신의 병세를 전한 후 제사에 참사하지 못한 데 대하여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內行을 데려올 일을 의논하기 위하여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가을이 깊어가는 때에 상대의 건강은 계속하여 좋으며 큰 집 여러 식구들도 평안하고 자신의 며느리 모녀도 무탈한지 물었다. 한편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큰 添節은 없으나 자신이 감기가 들어 여러 날 고생 중이라 하며 제사 때에는 마땅히 가서 통곡해야 했었으나 세사에 매여 모른 것처럼 지냈으니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 하였다. 또 일간에 달려가 뵈어야 하나 병중이라 또한 뜻대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행은 상대 쪽 사정이 곤란한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내년 봄에는 길을 가기에 조심스러워 뜻과 같기 어려울 것이라 춥기 전에 데리고 올 터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으로 篪伯씨의 안부를 물었는데 篪伯은 李篪發의 자이다. 아들 철호를 갈암의 8세손 李晦發의 후사로 입양하였다.
강봉원은 봉화 法田에 살았다. 陶隱 姜恪의 후손으로 부친은 桂下 姜濟(1826~1919)이다. 字는 舜來, 호는 海隱이다. 참봉과 寧越府使를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