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6월 12일, 李壽岳이 자신의 고모부에게 보내어 안부를 묻고 일을 의논한 편지
1886년 6월 12일, 李壽岳(1845∼1927)이 자신의 고모부에게 보내어 안부를 묻고 일을 의논한 편지이다.
더운 날씨에 상대방과 가족의 안부가 어떤지, 그 마을의 전염병은 가라앉았는지 물었다.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上坪과 下坪을 오가는 것이 일상이며, 독서에 대해서는 北窓의 시원함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모를 정도이니 우스운 일이라 겸사하였다. 아이들의 과거 공부는 나아지는 기색이 전혀 없는데, 조금 큰 아이는 농사일에 골몰하느라 때로 초조한 모양이나 자신의 일이 바빠 동네 사정을 돌아볼 여가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용건으로 지난 번 性奉에게 4냥의 돈을 부쳤으나 다른 데 써버렸고, 그 후 鄭用에게 부치며 곧바로 전하라 하였었는데, 또 기한을 어겼으니 신용이 없다는 꾸지람을 들을 듯하다 하고, 함께 보내는 배지[牌旨]를 하인으로 하여금 찾아오도록 부탁하였다.
이수악은 본관이 재령, 자는 致崇이며 호는 于軒이다. 存齋 李徽逸의 8세손이다. 둘째 집 손자 喆浩를 葛庵 李玄逸의 9세손 晦發에게 양자로 보내어 그 宗祀를 잇게 하였다. 1886년에는 왕세자 책봉에 대원군이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4년 동안 길주에 유배되기도 하였고, 1895년의 을미사변으로 봉기한 을미의병의 영해창의대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우헌집》 8권 4책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