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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강제(姜濟)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85.4792-20160630.01142570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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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강제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작성시기 1885
형태사항 크기: 23 X 4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갈암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5년 강제(姜濟) 서간(書簡)
1885년 9월 24일에 강제가 사돈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 및 형제분들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으로 맏아들과 며느리의 소식을 전하였다. 서울 소식으로 대원군이 다시 조정으로 돌아온 뒤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어서 둘째아들의 집에 물 긷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전했고, 또 전에 부탁한 일을 처리해달라는 요청도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85년 9월 24일, 姜濟가 전염병이 치성한 가운데 안부를 묻고 興宣大院君과 관련한 서울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하여 사돈 형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9월 24일에 姜濟(1826~1919)가 전염병이 치성한 가운데 안부를 묻고 興宣大院君과 관련한 서울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하여 사돈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가을의 늦더위에 형제와 가족의 건강이 좋은지를 묻고, 자신은 맏아들이 아직도 술 취한 듯한 떠돌이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여 불쌍하나 손부는 큰 탈이 없으니 다행스럽다는 심정을 전하였다. 또한 서울의 근황으로 대원위가 돌아온 뒤에 관직이 더욱 높아져 3품 이상의 고관들도 마음대로 찾아가지 못하니 사서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어서 둘째 아이는 아직도 물을 긷는 아이종 하나 없으니 매우 안타깝다고 하고, 이전의 부탁은 특별히 마음을 써서 구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추신에서 稚崇은 요사이 평안한지를 물었다.
치숭은 李壽岳(1845~1927)의 字로 갈암 종손 李喆浩의 생가 조부이다. 致崇이라고도 하였다. 호는 于軒이다. 存齋 李徽逸의 8세손으로 영해에 살았다. 1886년 세자 책봉을 둘러싼 정국의 불안정 속에서 대원군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당론으로 인하여 4년 간 吉州에 귀양을 갔다.
강제의 본관은 晉州, 자는 美世, 호는 桂下이다. 陶隱 姜恪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姜鉉이다. 奉化 法田에 살았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만년에 蔭仕로 恭陵參奉을 제수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5년 강제(姜濟) 서간(書簡)

高秋能熱。懷仰正切。伏詢
卽辰
靜餘棣候衛重。眷下諸致
勻宜。區區仰溸。弟。衰狀無足
言者。長兒中酒氣味。尙不能
牢定脚跟。奔走棲屑之狀。良
用悶憐。孫婦姑無顯恙。可幸。
西毛。院位丈還次後。官益高
位益崇。三品以上。猶不得任
意投謁。況士庶之無難往拜。
豈如前日哉。次兒家尙無一箇
汲水。見甚悶切。前有所仰托者。
或可撥例求得。則何幸何幸。餘。不備
候上。
乙酉 九月 卄四日。弟 姜濟 拜。

稚崇近節。安衛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