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3월 13일, 李壽岳이 상대측 안부를 묻고, 지난날 가졌던 모임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고 지은 시를 보내기 위해 族叔에게 보낸 편지
1880년 3월 13일에 李壽岳(1845∼1927)이 상대측 안부를 묻고, 지난날 가졌던 모임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고 지은 시를 보내기 위해 族叔에게 보낸 편지이다.
열흘간의 즐거웠던 모임은 쉽지 않는 기회였는데 작별하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일상의 안부도 없이 모두 세속의 응대에만 몰두하느라 각기 흩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허여하고 분발하고자 했던 다짐이 이렇게 그만인가 생각된다고 하며 망연자실한 안타까움을 적고 있다. 이어서 여러분들의 거동은 여유로우신지 고을 어른들은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경치는 아름답고 여기저기 꽃과 버들이 피어나 詩想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흥치가 절로 생겨나는데 어느새 우러러 향해가는 그리움이 간절해짐을 토로하고 있다.
자신은 하루를 묵고 고향에 당도했다가 또 이틀을 묵고 내일 길을 나서려 하는데, 앞길에 도적떼가 창궐하여 길목마다 노린다고 하니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고 만나 뵐 여유 또한 없다고 상황을 전하고 있다. 종이를 대하니 그리움이 배나 더하지만 각자 진중하길 바랄 뿐이라고 하면서 서찰을 마무리 하고 있다. 추신으로 보내주신 詩韻이 진기하여 화답할 수 없는데 괴롭게도 화운을 하라고 하시니 겨우 ‘廬’자로 拙句를 지어 보내니 살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자 이수악은 본관이 재령, 자는 致崇이며 호는 于軒이다. 存齋 李徽逸의 8세손이다. 둘째 집 손자 喆浩를 葛庵 李玄逸의 9세손 晦發에게 양자로 보내어 그 宗祀를 잇게 하였다. 1886년에는 왕세자 책봉에 대원군이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4년 동안 길주에 유배되기도 하였고, 1895년의 을미사변으로 봉기한 을미의병의 영해창의대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우헌집』 8권 4책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