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1880년 3월 6일, 柳基鎬(1823~1886)가 상대방 주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 후 그 쪽에서 보낼 소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한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특히 穉崇은 남쪽으로 유배되었을 것인데 여독을 면하였는지 물었다. 그 仲氏의 과거 소식을 듣고 축하의 뜻을 전하였으며 재종숙께서는 건강한지 물었다. 또 자신은 쇠약한 몸으로 겨우 지탱하니 말할 만한 것이 없으나 숙부가 건강에 이상이 없고 집안이 별고 없는 것이 다행이라 하였다. 그러나 주변에서 과거에 응시하였던 사람이 다 낙방하여 실망이라 하고 執君 또한 늦은 나이에 진창길에 욕을 보았는데 다른 여독은 없으나 그 손부가 분개하는 모습이 세정을 모르는 모양이라 가소롭다고 하였다. 한편 소금은 몇 말이나 보내게 되는지 지금 보내는 종이 돌아오는 인편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穉崇은 李壽岳(1845~1927) 자인데, 致崇이라고도 하였다. 호는 于軒이다. 存齋 李徽逸의 8세손으로 영해에 살았다. 1886년 세자 책봉을 둘러싼 당론으로 인하여 4년 간 吉州에 귀양을 갔다. 1896년 을미의병 때는 영해 의진의 의병장으로 거의하였다가 고종의 해산령으로 해산하였다.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류기호는 본관이 全州이고 자는 鞏甫, 호는 石隱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리자 臨川書院의 훼철을 반대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가 강원도 金華로 유배되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