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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80.4717-20160630.01142570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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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80
형태사항 크기: 21.5 X 48.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갈암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0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1880년 3월 6일, 柳基鎬(1823~1886)가 상대방 주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 후 그 쪽에서 보낼 소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한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특히 穉崇은 남쪽으로 유배되었을 것인데 여독을 면하였는지 물었다. 그 仲氏의 과거 소식을 듣고 축하의 뜻을 전하였으며 재종숙께서는 건강한지 물었다. 또 자신은 쇠약한 몸으로 겨우 지탱하니 말할 만한 것이 없으나 숙부가 건강에 이상이 없고 집안이 별고 없는 것이 다행이라 하였다. 그러나 주변에서 과거에 응시하였던 사람이 다 낙방하여 실망이라 하고 執君 또한 늦은 나이에 진창길에 욕을 보았는데 다른 여독은 없으나 그 손부가 분개하는 모습이 세정을 모르는 모양이라 가소롭다고 하였다. 한편 소금은 몇 말이나 보내게 되는지 지금 보내는 종이 돌아오는 인편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穉崇은 李壽岳(1845~1927) 자인데, 致崇이라고도 하였다. 호는 于軒이다. 存齋 李徽逸의 8세손으로 영해에 살았다. 1886년 세자 책봉을 둘러싼 당론으로 인하여 4년 간 吉州에 귀양을 갔다. 1896년 을미의병 때는 영해 의진의 의병장으로 거의하였다가 고종의 해산령으로 해산하였다.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류기호는 본관이 全州이고 자는 鞏甫, 호는 石隱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리자 臨川書院의 훼철을 반대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가 강원도 金華로 유배되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80년 3월 6일, 柳基鎬가 보내올 소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한 편지
1880년 3월 6일, 류기호(柳基鎬)가 상대방이 보낼 소금의 양을 물어보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와 남쪽으로 유배된 치숭(穉崇)의 소식에 대해 물은 뒤 그 둘째형의 과거 소식에 대해 축하를 전하고 재종숙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자신은 말할 만한 것이 없고 숙부의 건강과 집안에 별일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 하였다. 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과거에 다 낙방한 일을 언급하면서 실망스러운 마음을 드러내고, 소금은 몇 말이나 보내게 되는지에 대해 지금 보내는 인편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0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拜候狀。
省式。別後。淸範每勞夢
想。邇來花春。伏惟
靜體起居衛重。眷內均吉。
仰慰區區。村內諸候幷何如。
穉崇兄想不免南圍之行。
而能免憊祟否。聞其仲公
榜音。深賀萬萬。
再從阮氣力。近保康衛否。又
溯仰不任。弟朞服人。一味衰
懶。無足奉道於友朋之間。而
惟幸猶候免愆添。同堂一依
耳。但科擾徒費一番紛汨。而
全軍沒敗。令人笑歎。執君
幸無餘憊。然老儒耳。辱
於塵泥。豈非可羞耶。其孫
婦昨日來見我。深有憤恨
之色。可笑其婦女之不世情也。
爲運塩事。起伻。幸量亦出
付去隷。回示幾斗。如何。餘。坐
齋。不宣狀式。
庚辰三月六日。弟朞服人 柳基鎬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