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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78.4777-20160630.07142570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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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흥수, 김진명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878
형태사항 크기: 27.2 X 37.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8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
1878(고종 15)년 10월 1일에 남흥수(南興壽)(1813∼1899)가 대남(大南)에 사는 사돈에게 집을 짓는 일을 축하하고 하현(河縣)에서 만나자는 것에 대해 답변한 편지이다. 상대가 터를 잡고 집을 짓는 일을 직접 한다고 하니, 먼저는 그 재산이 늘어남을 축하하고, 이어 그 정정함에 탄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현에서 만나자는 지시는 즐겁게 달려갈 것이지만, 내년 봄에나 가능하겠다고 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78(고종 15)년 10월 1일에 南興壽(1813∼1899)가 大南에 사는 사돈에게 집을 짓는 일을 축하하고 河縣에서 만나자는 것에 대해 답변한 편지
1878(고종 15)년 10월 1일에 南興壽(1813∼1899)가 大南에 사는 사돈에게 집을 짓는 일을 축하하고 河縣에서 만나자는 것에 대해 답변한 편지이다.
남흥수는 상대가 자신과 같이 늙어가고, 거처로 따지면 叅星과 商星처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정회를 전달하고 외로운 심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편지뿐이라고 하였다. 상대가 보내준 편지를 받고서 아들과 손자가 평안하게 잘 지낸다하여 멀리서나마 위로가 된다고 하였고, 남흥수 자신의 가족들 안부를 전하였다. 자신이 고통 받는 것은 아비를 잃은 두 손자가 모두 홍역을 앓아 큰 애는 아홉 달 동안 고생해도 아직 낫지 않았고, 臨河에 사는 딸은 심한 병으로 서너 달 누워있는 상태라고 하였다.
이 편지의 본론은 상대가 터를 잡고 집을 짓는 일을 직접 한다고 하니, 먼저는 그 재산이 늘어남을 축하하고, 이어 그 정정함에 탄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河縣에서 만나자는 지시는 즐겁게 달려갈 것이지만, 내년 봄에나 가능하겠다고 하는 내용이다.
남흥수는 자는 稚孺, 호 濠隱이고 定齋 柳致明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남흥수의 조부는 南澤萬(1729~1810)인데 호는 勿小窩이며 左承旨로 추증된 인물이다. 아버지는 南景适인데 사후 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영천이씨 李箕應의 딸이고 부인은 전주류씨 柳秉休의 딸이다. 그의 저서로는 『歷代摠錄』, 『儒賢錄』, 『隨見錄』이 있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8년 남흥수(南興壽) 서간(書簡)

大南 寓軒 回納。
湖村 謹謝書。 謹封。
吾輩。以年則同衰暮也。以居則邈
參商也。其所以傳情寫懷。以紓離索
之恨者。惟羽鱗是憑。而顧此頹懶無
似。固不能自我先施。例承
惠存。愧感之極。罔知攸謝。仍審玆者
秋霖。
兄候啓居連衛。令胤外內穩相。玉抱
善茁善謔。以供素居滋況。遙慰區區。弟
不可以今日無見苦。自爲之依度。而失
恃。兩孫皆經疹憂。其長也。閱九朔而尙
未蘇完。且臨河女阿。以甚祟數朔委
苦。快却無期。七旬衰腸。每從這擾惱。
自爾和平不得。奈何。家役。占基新
成。親執事役云。先賀其力勢之稍
紓。而繼
歎其矍
鑠哉是
翁也。
半遇
之敎。
甚是好
事。敢不
樂赴。惟
在開春
後更處分。餘。
不宣謝禮。伏惟
照在。
戊寅陽月初吉。弟 南興壽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