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류건호(柳建鎬) 서간(書簡)
1877년 12월 6일, 柳建鎬(1826~1903)가 새 손부가 혼례를 마치고 온 후,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감사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아들이 돌아오는 편에 두 통의 서찰을 받고서 형제분과 집안의 범절이 평안함을 알게 되니 위로가 된다 하며, 다만 아위(亞闈: 叔母)의 눈병[司視之患]이 염려스럽다 하였다. 이어서 신부는 가문의 복을 새로 지을 사람이라 온 집안이 매우 사랑스러워 한다 하며, 한편 자신의 손자 아이는 겉모양만 고울 뿐 사실은 빈껍데기여서 기량이 금방 탄로가 날 것이니 대방가의 모범으로 지도해 달라고 하였다. 폐백에 대해서는, 상대가 말씀과는 달리 너무 후하게 보낸 듯하다고 치하한 후, 그러지 못한 자신의 예는 속습도 아니고 고풍도 아니라 가소로울 뿐이라 하였다. 이어 다시 근친을 가야 할 터인데, 매우 추운 때에 문안을 가야 할 어린 사람의 약한 체질이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류건호는 본관은 全州, 字는 彛執, 號는 石下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안동의 박실[朴谷]에 살았고, 저서로 《石下集》이 전한다. 부친은 柳致任인데, 부친이 편지를 쓰기 한 해 전인 병자년에 졸하였으므로 이때가 親喪 中이었다. 처음과 말미의 ‘稽顙’이나 ‘罪人’이라는 표현, 吉福을 나누어야 할 편지에 완악한 자신의 목숨은 말하지 않는 것도 무방할 것이라는 언급에도 드러나 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