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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류건호(柳建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77.4717-20160630.0114257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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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7
형태사항 크기: 31.3 X 43.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갈암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7년 류건호(柳建鎬) 서간(書簡)
1877년 12월 6일, 柳建鎬(1826~1903)가 새 손부가 혼례를 마치고 온 후,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감사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아들이 돌아오는 편에 두 통의 서찰을 받고서 형제분과 집안의 범절이 평안함을 알게 되니 위로가 된다 하며, 다만 아위(亞闈: 叔母)의 눈병[司視之患]이 염려스럽다 하였다. 이어서 신부는 가문의 복을 새로 지을 사람이라 온 집안이 매우 사랑스러워 한다 하며, 한편 자신의 손자 아이는 겉모양만 고울 뿐 사실은 빈껍데기여서 기량이 금방 탄로가 날 것이니 대방가의 모범으로 지도해 달라고 하였다. 폐백에 대해서는, 상대가 말씀과는 달리 너무 후하게 보낸 듯하다고 치하한 후, 그러지 못한 자신의 예는 속습도 아니고 고풍도 아니라 가소로울 뿐이라 하였다. 이어 다시 근친을 가야 할 터인데, 매우 추운 때에 문안을 가야 할 어린 사람의 약한 체질이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류건호는 본관은 全州, 字는 彛執, 號는 石下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안동박실[朴谷]에 살았고, 저서로 《石下集》이 전한다. 부친은 柳致任인데, 부친이 편지를 쓰기 한 해 전인 병자년에 졸하였으므로 이때가 親喪 中이었다. 처음과 말미의 ‘稽顙’이나 ‘罪人’이라는 표현, 吉福을 나누어야 할 편지에 완악한 자신의 목숨은 말하지 않는 것도 무방할 것이라는 언급에도 드러나 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77년 12월 6일, 柳建鎬가 새 손부가 혼례를 마치고 온 후,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감사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77년 12월 6일, 류건호(柳建鎬)가 안부를 묻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두 통의 편지를 받고서 상대방 형제와 집안이 평안함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되지만 숙모의 눈병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새 손자며느리를 온 집안이 사랑스러워 한다고 하면서, 부족한 자신의 손자를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외에도 너무 후하게 보낸 폐백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손자며느리가 추운 날씨 중에 친정나들이를 가는 것에 대해 염려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7년 류건호(柳建鎬) 서간(書簡)

稽顙。講服
先徽。積世年所。會有此夤。而謂契誼之
有所更篤。則吾輩見陋耳。苦��之際。
迷督還。繼伏奉
一幅兩緘。洽量對次譚讌。仍伏審急
景隔幔。體宇湛相。閫庇一一淸平。仰慰。
庸副溯祝。但聞
亞闈司視之患。至不能動與禮筵。伏切瞻
悶。新人旣來。殆使不面者。顚倒認量。私門
尙有再造之福。闔室愛戴顧何如。而但
不能早圖在前。貽此不洎之恨。爲一遭
光景。然一初吉場也。都縮了。不敢索言
耳。癡孫。外面若嫵媚。或爲
鍾慈所揜。而直量空殼而已。黔之驢。
想已露綻盡伎倆。
不待遠貢。所恃惟
痛繩大方模楷
耳。俗儀往來。
來諭謂不以多爲
禮云。猶見其欲多之
意。故在況下於此者。
其敢曰超俗耶。
非俗非古。政可笑
也。仍再不妨除契。
而歲前盡量。劇冱
之候。穉質溯歸。政
可念耳。續當有候。
姑此縮語。且看無
自道狀。其頑延哀臆。亦不妨
闕却于吉書。可默揣否。荒
迷不次。伏惟尊照。謹謝疏上。
丁丑臘月六日。弟罪人 柳建鎬 稽顙。
兒行期逝不還。入門之際。不免
作過當之擧。蓋以此間晴景。
非險嶺可比故耳。但自念氣質
難變。到老尙如此。聞之。想發一
笑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