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2월 3일, 南興壽 외 1인이 校任에 대한 의견이 남들과 다른 자신의 문중 의견을 피력하고 수급자의 동의를 구하는 편지
1875년 2월 3일, 南興壽(1813~1899 외 1인이 校任에 대한 의견이 남들과 다른 자신의 문중 의견을 피력하고 수급자의 동의를 구하는 편지이다.
서두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집안에서 숨죽이고 사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아무리 돌아봐도 온 문중이 남에게 멸시를 당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校任을 두고 제멋대로 괴상한 짓을 하는 무리들을 한탄한다. 자신들은 교임이 옛날처럼 안정되어 享禮가 무사히 행해지길 바랄 뿐이라고 항변한다. 또한 수급자가 자신들의 뜻과 같은 줄 알고 있었는데, 근자에 교임의 체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을 듣고 거기에 대해 크게 반발한다. 구임을 체직하면 많은 일이 번거로워진다는 등의 견해를 제시하고 자신들의 견해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다 읽은 다음 불태우는 것이 어떠냐고 追記하고 있다.
남흥수는 본관은 英陽이고 자는 稚孺, 호는 濠隱이다.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았으며, 遺集이 남아 있다.
이 편지는 校任을 둘러싼 문중 사이의 입장차나 갈등을 보여주는 등 향촌 사회의 구체적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