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고종 8)년 1월 17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願納錢의 처분에 대해 사정을 전하는 편지
1871(고종 8)년 1월 17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願納錢의 처분에 대해 사정을 전하는 편지이다.
잠시 격조하였기에 그립고 앙모하는 마음 그지없다면서 상대와 상대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울러 마을의 전염병은 진정되고, 장례는 날짜를 정했는지도 물었다. 김진명 자신은 60나이를 지나 약술만 마시고 있어 탄식이 난다고 하였다. 멀리서 상대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다른 가족들은 조금 병들이 있고, 며느리도 건강하지 않아 걱정된다고 전하였다.
본론은 상대는 원납전을 마쳤는지 물었다. 자신의 고을은 소동은 없었지만, 洞中에 분배하면서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는데, 이는 이웃고을에서 행하지 않는 것을 먼저 행하는 것이므로 갓과 치마를 찢고 상민과 같이 하려하니 억울함이 많다고 하였다. 또 유배시켰다는 것을 듣기도 했으나 雲宮에서 그 처리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책을 활자로 간행하는 일은 川前에서 하는 기준에 따라 빨리 시행하라고 하였다. 『敬窩集』의 남은 권수를 모두 붙였다고 하였다. 醬塩을 사 두었다고 하니 번거롭게 해서 송구하다면서 돈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