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고종 8)년 3월 25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상대의 아들이 과거시험을 치루고 거쳐 가는 편에 여러 소식을 전하는 편지
1871(고종 8)년 3월 25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상대의 아들이 과거시험을 치루고 거쳐 가는 편에 여러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상대 아들이 먼 길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상대 쪽의 심부름꾼이 서간을 가지고 오니, 기이한 우연이라고 하였다. 상대와 상대 가족들이 잘 지낸다고 하여 더욱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단지 상대 쪽 고을의 변란의 소식은 걱정스러웠는데, 捕校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어지러운 공초에 엮이어 불가피하게 누구누구가 엮여들어 간 것 외에 모두 무마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按覈使가 부임하여 조사하기 이전에는 근심을 늦출 수는 없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데, 단지 而遠[金鎭大(1819~1885)] 집의 장례식은 치렀고, 弟嫂의 장례가 또 6일에 있어 슬프고 골몰하던 중에 손녀딸이 큰 탈이 생겨 몸져누워 앓고 있는 것이 한 달이나 되었다고 사정을 전하였다.
상대의 아들이 천리 길을 갔다가 무탈하게 돌아왔고, 2등으로 급제했다고 전하였다. 며칠 붙들어두어 도로가 뚫리고 고을의 소란이 진정되어 돌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고 전했다. 그런데 그쪽의 인마가 도착해버려, 함께 머물 수도 없기에 보낼 수밖에 없는 섭섭함을 표시하였다. 三江의 鄭氏의 관례가 이번 달 28일에 있다고 심부름꾼을 통해 초대를 받았는데, 가보고 싶지만 몹시 소란스러워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 전하였다. 그러나 騷撓는 저절로 소탕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