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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70.4717-20160630.07142570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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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0
형태사항 크기: 22.6 X 47.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0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70(고종 7)년 2월 24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상대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손녀의 결혼식을 봄에 할 계획인데, 반장댁의 상사로 이후로 미루었다고 하였다. 콩 여덟 말을 사두었다고 전에 편지하였는데, 사람들의 성화에 세 말을 두고 한 말은 집에 보내어, 네 말만 상대에게 보내지만, 세 말 가격만 보내달라고 하였다. 면종 세 말을 함께 보낸다고 하는 편지이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70(고종 7)년 2월 24일에 金鎭明(1813~1872)이 상대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콩을 보낸다는 편지
1870(고종 7)년 2월 24일에 金鎭明(1813~1872)이 상대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콩을 보낸다는 편지이다.
지난달 상대에게 두 번의 편지를 받았는데, 자신이 쓴 편지를 元邱의 朴君편에 보냈으나 답장이 없는걸 보면 도중에 분실된 것 같다며 애석해 하였다. 이번에 다시 상대의 편지를 받고는 상대와 상대의 가족들이 편안함을 알아 기쁘다고 하였다. 김진명은 손과 발에 종기가 나 고생하고 있고, 며느리 모녀가 건강하지 않지만 특별한 병은 없다고 하였다. 그 밖에 雨谷에 사는 季君의 손녀가 돌림병에 걸렸고, 瓢谷의 季好令은 뜻밖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李臺公이 수일동안 머물고 간다고 하니, 단란한 모임이 될 것이라며 자신이 참여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하였다. 손녀의 결혼식을 봄에 할 계획인데, 泮長宅의 喪事로 이후로 미루었다고 하였다. 콩 여덟 말을 사두었다고 전에 편지하였는데, 사람들의 성화에 세 말을 두고 한 말은 집에 보내어, 네 말만 상대에게 보내지만, 세 말 가격만 보내달라고 하였다. 綿種 세 말을 함께 보낸다고 하였다.
김진명의 字는 文若, 號는 吉軒이며 定齋 柳致明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44년(헌종 10) 증광시 생원 3등 22위로 합격하였으나 더 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문학에 뛰어났고, 향리에서 행동이 바른 것으로 칭송을 들었다. 조부는 金聖欽으로 호가 臥溪이며, 1728년(영조 4) 李麟佐李亮信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었다. 아버지는 金繼壽이다. 부인은 3명을 맞이했는데 안동권씨 權載書 딸과 단양우씨 禹鍾恒의 딸, 안동권씨 權永老의 딸이다. 그의 저서로는 『吉軒集』이 있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0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狀上。
湖上 棣服座前。 省式謹封。
省式。前月兩度惠書。果皆承審。而弟之
旬間付元邱朴君便者。來示不及。若不沈
滯於其所。則似不免洪橋。世間事不必信。果如
是耶。卽日川上便。又拜手畢。欣審春仲
棣床服履崇衛。
子舍諸況珍吉。爲慰萬萬。第
令侄婦夫人窆禮。伏計已行矣。種種悲溯。服弟。
一味衰汨中。又以足指疣瘇。庭戺動作。不能任
意。只自苦憐。婦阿母女。雖未健好。而姑無見恙。
雨谷季君。以孩孫輪憂。用慮不少。可憫。
季好令。意外喪逝。吾黨可相弔。奈何。
臺公
來留數日云。其團樂可想。每擬相聚貴
中。而好事難期。又是隔歲顔面。今承示。直欲
奮飛。而不可得也。嬌昏。擬以春間成禮計矣。近聞
泮長家有喪云。不得不退待葬後。早晏
姑未卜耳。一枉之企。言煩矣。望渴矣。何必更
提耶。醬塩非不緊急。而要待麥耕後。今旱勢
如此。而焦壤莫墾。玆以起送人牛。然險歲脩道。或無
他慮耶。太八斗買置矣。前書有所云云。且爲人强
賣。所存只三斗。送家太一斗。四斗呈似。三斗價送之
如何。綿種三
斗伴呈耳。
餘萬。非筆可
旣。姑留不宣。
伏惟
下照。
庚午二月念四日。弟 服人 金鎭明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