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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8.4717-20160630.0714257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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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8
형태사항 크기: 21.7 X 45.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8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8(고종 5)년 윤4월 15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에게 천상(川上)의 족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시는 추후에 지어 보내겠다는 편지이다. 족숙이 80살 먹은 나이로 암행어사의 감찰에 걸리어 밀양으로 이송하였는데, 이는 본인의 수치이자 한 고을의 변고로서 매우 분통이 치솟는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8(고종 5)년 윤4월 15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川上의 族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시는 추후에 지어 보내겠다는 편지
1868(고종 5)년 윤4월 15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川上의 族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시는 추후에 지어 보내겠다는 편지이다.
상대와 상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김진명 자신은 육신만 겨우 보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바깥사랑채에 와서 거처하는 奴子들이 차례대로 전염병에 걸리어 仰役奴의 어미와 처가 모두 아파하여 당장 죽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이를 피하고자 하나,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열흘이 지난 지금에서 조금 진정되는 분위기라고 전하였다. 나머지 집안의 다른 모든 식구들이 큰 탈이 없다고 하였다.
단지 川上의 族叔이 80살 먹은 나이로 암행어사의 감찰에 걸리어 밀양으로 이송하였는데, 본군의 수령과 緣坐收司의 죄명으로 맨 위에 올랐으니, 이는 본인의 수치이자 한 고을의 변고로서 매우 분통이 치솟는다고 하였다. 상대가 부탁한 시를 지어달라는 것은 얼마든지 지어 보낼 수 있지만, 현재는 마음이 심란하여 다음에 지어 보내겠다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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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68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湖村 棣座下 執事。
臨河 金査弟 候狀。
邇來阻陔。莫收平信。望在焚林中。
尤倍庸慮。謹問梅雨乍霽。
聯床起定湛衛淸讌。
庇位諸況勻慶。婦阿母女俱免恙。
葉底幸保淨界否。種種遠溸不任
鄙忱。弟僅保軀殼。而第奴子之來。居
外廊者。次第染出。仰役奴之母妻俱
痛踰關。這間爻象。若不保朝夕。欲
分眷出避。而四顧無適。今則已過旬
餘。或可弛慮耶。家累姑無大何。興嬌
亦無恙。各家及雨谷亦依遣。但川上
叔。以八耋之年入繡。逮移密陽。蓋以
本倅緣坐收司之律。施之於首位也。小而
爲右叔一身之辱。一門之辱。大而爲一鄕
四百年所未有之變。極爲羞憤。而亦且
無奈何耳。貴中一行。以此多碍。方又以
念後擬之。而指與蹄似不入手。畢竟似
不該矣。前書所
謂每月有念晦。
無乃爲言讖耶。
呵呵。俯索韻
語。可謂强焦。饒
以千斤。有難
仰副。然近來
心緖擾擾。無暇
思索。稍竢心定
後圖之。然兄韻
極好。弟之拙��。
似不合則華構
耳。適因反浦
喪人便。忙
艸不宣。伏
惟照在。
戊辰閏月望日。査弟 鎭明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