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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7.4717-20160630.07142570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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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22.5 X 42.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7(고종 4)년 11월 3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에게 문중에 대한 일로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앞선 편지의 부탁은 잘 알았다면서, 상대 쪽 문중에서 저쪽으로 투속한 자를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다. 권씨가 오히려 선현의 이름을 빌어 행패를 부린다는 이름을 얻으니 상대 쪽의 의견이 어떻길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지 묻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7(고종 4)년 11월 3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문중에 대한 일로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
1867(고종 4)년 11월 3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문중에 대한 일로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자신의 아들이 상대 쪽에서 추위 속에 돌아와서는 상대의 편지를 받아보고 잘 지낸다는 내용에 기쁘다고 하였다. 또 며느리 모녀가 모두 평안하다하여 안심이 된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은 예전처럼 잘 지낸다고 하고, 다만 식구들이 모두 병이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자신의 아들이 상대에게 열흘간 머물면서 폐를 끼친 것이 많아 송고하고, 좋은 가르침을 받아 감사하다고 하였다. 李判事를 결국 만나지 못하여 슬퍼진다고 하고, 다음해 봄에는 꼭 만나자고 하였다. 앞선 편지의 부탁은 잘 알았다면서, 상대 쪽 문중에서 저쪽으로 투속한 자를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다. 권씨가 오히려 선현의 이름을 빌어 행패를 부린다는 이름을 얻으니 상대 쪽의 의견이 어떻길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지 묻는 내용이다. 玄魚는 구하기 어려워 龜脯로 대신할 수 있는지 물었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湖上 棣座 執事。
臨河 金査弟 謝狀。 謹封。
方掘指計兒歸。饕寒中凌。兢然臨
門。一豁而一憐也。仍承
惠畢謹審近日毒寒
棣履湛讌一向康謐。允位各房勻吉。而
婦阿母女俱穩侍免恙。慰賀萬萬。不勝
盡喩。弟。姑昨狀。而第家累色色告病。孩豚以
毒感欲死。老姊宿祟。當寒大添中。方以旬
間旋歸計。種種憫惱。惟是嬌依遣。堂內及
俱無它。兒督留得旬日。想貽累門屛多
矣。至則善敎之喩。承來不勝汗顔。李判事
竟失一握。不覺悵黯。明春之約。竊擬勿違。然
吾輩一會合。亦有數存焉。彼此程塗各絶。安
知行期之在幾時。而邂逅如期也。前書諭意
謹悉。吾兄所執。正是障川之底柱。彼奔流
滾汨。雖百折難回。而亦何害於屹立耶。名爲吾黨。
而侮棄先賢。誠名敎之所不與也。貴門之投
附者。固不欲一一指摘。而其中有知識者。亦不免焉。
此則罪浮於權。彼權猶有假先行悖之名。貴
門抑獨何心。更不欲泚筆收議也。餘萬。非
筆可旣。都留
不宣。惟冀
回照。
丁卯至月初三日。査弟 金鎭明 拜謝。

玄魚之托。乾生中萬無求得之路。此
亦有用處而未得。或代以鼂脯。則可圖
之耶。
鄙族興甫氏有劇病。
似有不起之慮。幸通于
壽日亭女家。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