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고종 4)년 11월 3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문중에 대한 일로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
1867(고종 4)년 11월 3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문중에 대한 일로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자신의 아들이 상대 쪽에서 추위 속에 돌아와서는 상대의 편지를 받아보고 잘 지낸다는 내용에 기쁘다고 하였다. 또 며느리 모녀가 모두 평안하다하여 안심이 된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은 예전처럼 잘 지낸다고 하고, 다만 식구들이 모두 병이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자신의 아들이 상대에게 열흘간 머물면서 폐를 끼친 것이 많아 송고하고, 좋은 가르침을 받아 감사하다고 하였다. 李判事를 결국 만나지 못하여 슬퍼진다고 하고, 다음해 봄에는 꼭 만나자고 하였다. 앞선 편지의 부탁은 잘 알았다면서, 상대 쪽 문중에서 저쪽으로 투속한 자를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다. 권씨가 오히려 선현의 이름을 빌어 행패를 부린다는 이름을 얻으니 상대 쪽의 의견이 어떻길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지 묻는 내용이다. 玄魚는 구하기 어려워 龜脯로 대신할 수 있는지 물었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