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고종 4)년 10월 2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맏아들이 가니 빨리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
1867(고종 4)년 10월 2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맏아들이 가니 빨리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를 보낸 지 한 달이 넘어 그립던 차에 상대와 상대의 형제들이 잘 지내는 지 묻고, 또 며느리와 손녀인 慶嬌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김진명 자신은 다리에 피가 맺히는 증세가 조금 차도가 있으나, 先山에 돌을 세우는 일로 九峴에 갔다가 돌아와서 그나마 조심하고 있다고 하였다. 奴子들이 모두 건강하지 않고, 늙은 누이도 객지의 병으로 며칠 누웠다가 비로소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본론은 맏아들이 상대 쪽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 마음상의 한 병이 되었다가, 그 부인이 歸覲함으로 인해 상대 쪽으로 가니, 3일 후에 돌려보내 달라 하였다. 말은 남겨놓아도 되는데, 노자는 가을걷이가 바쁘니 22일에 맞추어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