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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7.4717-20160630.07142570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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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22.6 X 45.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7(고종 4)년 10월 20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에게 자신의 맏아들이 가니 빨리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맏아들이 상대 쪽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 마음상의 한 병이 되었다가, 그 부인이 귀근함으로 인해 상대 쪽으로 가니, 3일 후에 돌려보내 달라 하였다. 말은 남겨놓아도 되는데, 노자는 가을걷이가 바쁘니 22일에 맞추어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7(고종 4)년 10월 2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맏아들이 가니 빨리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
1867(고종 4)년 10월 2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맏아들이 가니 빨리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를 보낸 지 한 달이 넘어 그립던 차에 상대와 상대의 형제들이 잘 지내는 지 묻고, 또 며느리와 손녀인 慶嬌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김진명 자신은 다리에 피가 맺히는 증세가 조금 차도가 있으나, 先山에 돌을 세우는 일로 九峴에 갔다가 돌아와서 그나마 조심하고 있다고 하였다. 奴子들이 모두 건강하지 않고, 늙은 누이도 객지의 병으로 며칠 누웠다가 비로소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본론은 맏아들이 상대 쪽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 마음상의 한 병이 되었다가, 그 부인이 歸覲함으로 인해 상대 쪽으로 가니, 3일 후에 돌려보내 달라 하였다. 말은 남겨놓아도 되는데, 노자는 가을걷이가 바쁘니 22일에 맞추어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湖村 棣座 執事。
臨河 金査弟 候狀。
便後。月已圓缺。懷菀又覺倍常。近日
寒候漸至。謹未惟
棣床湛讌加護衛相。
胤友遠役保無餘委。侍課珍吉。婦
阿亦穩侍。而慶嬌免恙。種種傾嚮。殆無
已時也。査弟。向來脚血之症。近似少差。而以
先山立石事往九峴。歸才屬耳。幸不添劇。
因此而或底妥帖耶。孥累色色不健。老姊
又以客祟。數日澒洞。今才向歇。興嬌姑利
遣。餘何煩溷。兒督以積滯那邊行。爲心上
一病。竊計情理上。容或無怪。且念渠年紀
向晩。尙未抱男。此是大段關念處。渠婦旣
歸覲。因修一行。亦係情勢之所不已者。故玆
不免使之晉候。幸須留置三數日。卽爲命
送如何。鬣者姑無緊出入。留之無碍。奴子。則
秋務未畢。日急一日。卄二卽爲還送。伏望。
而遠兄弟伴去。今行政不孤。歸時又作
伴。則正是妙
事。未知如何。
餘。在兒子口傳。
姑此不宣。伏

照在。
丁卯陽月念日。査弟 金鎭明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