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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3.4717-20160630.07142570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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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3
형태사항 크기: 25.7 X 39.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3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3(철종 14)년 7월 15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에게 종군의 과거 낙방 소식과 해상에 첩을 주는 일에 대한 편지이다. 상대에게 한번 찾아가겠다는 것은 몸이 매여 이룰 수 없어 송구하다면서 20일 사이에 맞추어 갈 것이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3(철종 14)년 7월 15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從君의 과거 낙방 소식과 海上에 牒을 주는 일에 대한 편지
1863(철종 14)년 7월 15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從君의 과거 낙방 소식과 海上에 牒을 주는 일에 대한 편지이다.
상대와 상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김진명 자신은 부친의 근력이 쇠약해져 늘 근심을 하고 있고, 자신도 쓸데없는 일로 바쁘게 지낸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천연두를 잘 이겨내고, 아들은 별 탈 없이 지낸다고 하였다.
從君이 서울에 가서 어제 돌아왔는데 그가 과거 시험에 낙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였다. 영남 사람은 많이 참여할 수 없어 겨우 네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상대에게 한번 찾아가겠다는 것은 몸이 매여 이룰 수 없어 송구하다면서 20일 사이에 맞추어 갈 것이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海上에 牒을 주는 일은 조정에서 이미 논의하였다고 하지만, 아직 국왕의 윤허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실히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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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63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湖村 棣座下 謝上狀。 謹封。
阻信隔月。第切傾鬱。此際忽收
情畢。欣闊之甚。如聞隔世消息。矧審無前
虐炎
棣床湛讌淸穆。允玉侍學珍吉。餘外同堂
俱吉。第聞
穉魯兄入地不遠。淳厚眞實。更復見其人。
尤爲悲怛。査弟。跨夏病暍。全沒意緖。夏間
又失七歲嬌。便作胸下鐵釘。消磨不得。且
婦兒以甚症。一旬痛苦。今才向可。然尙未完
好。嬌長第俱不健。種種憐憫。惟萊警乍息。
堂內及雨谷季君俱遣耳。季君彼時行。飽
得德意。歸詑津津。但渠滯事甚緊。以未得
從頌爲恨耳。書中會合之難。誠如所示。
竊惟以兄而視弟。猶有一段緊戀。有加於弟。
何不較此漢而見枉也。冥菴刊所。竊擬一晉。而世
故纏繞。擺脫未易。凉生後丕圖之。此計若遂。當有
一面之幸耳。科期近聞退在明
春。姑未見行會。而傳者不啻
丁寧。鄙郡則從前。例多壅
閼。而貴中想不如是。此或齊東之野語耶。允
玉所就不凡云。何必過爲禁斷也。止慈之情。若
以獨行爲難。則帶去觀光。未爲不可。若嚴禁。則
似過矣似過矣。如何。若科事退定。則凉生後。未
可一番命送耶。餘萬。來价見促。不盡
宣。統惟照在。
癸亥七月望日。査弟 鎭明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