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철종 13)년 4월 23일에 金鎭明(1813~1872)이 상대에게 자신의 여러 안부를 전하며, 한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
1862(철종 13)년 4월 23일에 金鎭明(1813~1872)이 상대에게 자신의 여러 안부를 전하며, 한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이다.
상대의 답장을 받고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장례를 치루지 않았는데 다시 아이가 병들었다고 하니 멀리나마 대신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은 건강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지만, 다른 가족들과 며느리와 손녀들이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렸다.
純若[金鎭誠(1820~1883)]이 養子를 들여 보는 재미가 있지만, 친족 간에 갈등을 생겨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지난번에 상대의 고을에서 이웃 간에 싸웠던 일을 김진명의 친족들이 밟고 있는 상황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부끄럽다고 심정을 토로하였다. 상대가 방문하겠다던 약속이 일이 돌아가는 형세가 좋지 못해 연기되고 있지만, 장례가 끝나고 더워지기 전에 방문해 달라고 하였다.
김진명의 字는 文若, 號는 吉軒이며 定齋 柳致明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44년(헌종 10) 증광시 생원 3등 22위로 합격하였으나 더 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문학에 뛰어났고, 향리에서 행동이 바른 것으로 칭송을 들었다. 조부는 金聖欽으로 호가 臥溪이며, 1728년(영조 4) 李麟佐‧李亮信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었다. 아버지는 金繼壽이다. 부인은 3명을 맞이했는데 안동권씨 權載書 딸과 단양우씨 禹鍾恒의 딸, 안동권씨 權永老의 딸이다. 그의 저서로는 『吉軒集』이 있다. 김진성은 字가 純若이며, 號는 眞隱이다. 김진성이 金鎭珏의 아들 金益洛를 양자로 들이면서 양 집안간의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