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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2.4717-20160630.07142570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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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2
형태사항 크기: 30.3 X 32.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2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2(철종 13)년 7월 19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 남흥수(南興壽)에게 농사작황과 민란의 소요에 대해 전하고, 상대의 방문을 요청하는 편지이다. 당시에 농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앙을 늦게 해서 작물이 잘 익지 못했고, 논이 말라버려 추수할 것이 없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2(철종 13)년 7월 19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 南興壽(1813~1899)에게 농사작황과 민란의 소요에 대해 전하고, 상대의 방문을 요청하는 편지
1862(철종 13)년 7월 19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 南興壽(1813~1899)에게 농사작황과 민란의 소요에 대해 전하고, 상대의 방문을 요청하는 편지이다.
먼저 늦더위에 상대를 비롯하여 상대의 형제들과 아들, 종형제, 사촌여동생 댁의 안부가 편안한가를 물었다. 김진명 자신은 여름 더위로 칩복하고 있고, 다른 가족들과 며느리와 손녀들이 별 탈 없이 지낸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그리고 손녀들이 길쌈을 배우는 정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 양자로 나간 막내 동생 金鎭誠이 가을겨울 사이에 冠首하려 한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당시에 농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앙을 늦게 해서 작물이 잘 익지 못했고, 논이 말라버려 추수할 것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해는 임술 농민운동이 삼남 일대에 펴져가던 시기였다. 이에 대해 ‘아래 고을의 소요는 아직 그치지 않았고 근접한 곳에서도 부정한 염려가 있다.’라고 걱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한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본인은 다음 달 초에 監營에서 벌이는 科試를 참가하려 하지만, 주제넘은 짓인 것 같고, 또 타고 갈 말이 없어 그만 둘 수도 있다고 하는 내용이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2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湖村 棣座 執事 入納。 謹封。
閱盡三夏。毒熱潦海。而一片音信。無緣得凭。只有耿耿
者心。懸懸於左右也。謹伏問老炎。
棣床起居若序衛庇。子舍侍課長健。似聞婦氏有等
候遠近未的。良爲憫鬱。同堂僉況勻吉。表妹家大少
節俱安云耶。種種溸仰之至。弟。劫暑牢蟄。全沒好況。家
累無近憂。而婦阿亦免遣。但暑甚榦劇。墮乃汨沒中。
女嬌輩亦未得完健。而其長自今責出麻績。又過得三
四年後。其次之求漸至。而渠祖應酬之具無策。奈何。若爾。
則不得不與渠外祖丈分力相濟。預爲準備。如何。呵呵。從班
及舍季俱依遣。而季君自率養後。頗有意況。秋冬方
擬冠首。已有指定處。爲幸。年事。合下晩秧。雖使雨暘
調適。已失稔有。而旱氣又如此。前坪潦蕩處。無代播之
望。而水田皆涸。秋事已判無矣。且下邑騷撓。尙今未
止。旁近又似有不靖之慮。時事又可知。自上雖
矯捄之方。而其或有挽回之道耶。徒不禁漆室
之憂耳。貴鄕聞登稔云。可慰。色色愁惱中。
惟以生凉不遠。
執事或念及
長枉。幸賜一
顧。敍討襞積。
爲望。倘能不鄙。
而亟圖之否。切企切企。
來初欲觀光營
試。似未免馮婦
之譏。然此亦
積年廢鬱
之致耳。但
無所騎。此若
無變通。則不
得不坐停耳。
餘萬。非筆舌可
旣。都留不宣。
伏惟
照察。
壬戌七月旣望後三日。査弟 金鎭明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