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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1.4717-20160630.07142570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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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1
형태사항 크기: 21.7 X 30.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1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1(철종 12)년 2월 10일에 김진명(金鎭明)남흥수(南興壽)에게 며느리와 손녀를 데리러 가는 날짜를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3월 30일에 데리러 갈 것임을 알리면서 그 이전에도 길일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또 손녀가 행차하려면 날이 화창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1(철종 12)년 2월 10일에 金鎭明(1813~1872)이 南興壽(1813~1899)에게 며느리와 손녀를 데리러 가는 날짜를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861(철종 12)년 2월 10일에 金鎭明(1813~1872)이 南興壽(1813~1899)에게 며느리와 손녀를 데리러 가는 날짜를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전에 상대가 南行하고는 잘 돌아갔는지 안부를 묻고, 그 밖의 가족들 및 며느리와 손녀들이 잘 지낸다는 소식에 기쁘다고 하였다. 김진명 자신의 상황을 전하면서 하찮은 일로 바쁘지만, 다른 식구들은 별다른 근심이 없어 다행이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옴에 걸려 여러 달 치료하였는데 근래에 조금씩 차도가 있지만 다른 데 전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다음으로 純弟[金鎭誠(1820~1883)]와 而遠[金鎭大(1819~1885)]이 과거시험을 치러 서울로 향하였는데 합격의 여부보다는 무사히 잘 다녀오길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의 아들은 감영으로 가는 행차에 疥疾에 걸려 더 이상 행차하지 못한다는 소식도 아울러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며느리와 손녀를 데리러 가는 날에 대해 말하고 있다. 3월 30일에 데리러 갈 것임을 알리면서 그 이전에도 길일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또 손녀가 행차하려면 날이 화창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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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61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謹拜候上。

彼時承南旆未旋。其間果利稅。而
棣床起居莫無損害。允玉諸致勻慶。婦阿率嬌
依昔。區區懸仰。竝切拱祝。弟。勞碌無足奉煩。家累
幸免他憂。第家督以疥癬。匝月療治。近似向
殘。然合下同處。尙未馳戒。大抵內外室皆然。此疾
弟之所年前經㥘者。用是大段戒心。而姑未知末梢
如何耳。純弟與從兄而遠。俱作京行。險歲瑕慮不
尠。得失姑勿妄論。惟是往之无咎是俟。兒子坐於
疥疾。俾停營行。此則不爲無幸耳。婦阿不得不
以春間率來。玆以三月三十日定日仰告。其前不無
吉日。而第以弟之所拘。而過於差晩。且諸嬌之行。待
其日氣和暢。未知或無所掣耶。回眎之切仰。
時騷往往不佳。道上之說。不足想信。雖自不禁漆婦
之憂耳。餘萬。撓甚不宣萬一。伏惟
照察。
辛酉二月旬日。査弟 鎭明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