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60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60.4717-20160630.07142570155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0
형태사항 크기: 21.7 X 39.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0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60(철종 11)년 10월 26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에게 이계붕(李季鵬)과 만난다하여 가고 싶지만 말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전하는 편지이다. 교묘하게 결혼철을 맞아 말을 빌릴 수 없어 가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전하는 한편, 이에 말을 한 마리 사려고 계획 중인데, 생각처럼 된다면 이번 달 말일이나 내달 초에 출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말이 갖고 있어 바로 떠난 육촌 종형제 이원(而遠)에 대한 부러운 마음도 드러내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60(철종 11)년 10월 26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李季鵬과 만난다하여 가고 싶지만 말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전하는 편지
1860(철종 11)년 10월 26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李季鵬과 만난다하여 가고 싶지만 말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전하는 편지이다.
먼저 최근 安東權氏 족보에 관한 일로 매일 상대 쪽 고을인 寧海 사람들을 접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상대방의 좋은 소식을 들어 축하한다고 하고 있다. 김진명의 세 번째 부인은 안동 권씨(1831~1871)였는데, 이 당시 족보 때문에 안동으로 온 영해 지역에 사는 처가의 사람들을 자주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상대의 형제와 아들 등 여러 가족과 친정에 머물고 있는 며느리[南氏(1833~1886)] 및 손녀들의 소식을 묻고 있다. 김진명 자신은 어제 선산에 비석을 세우는 일로 갔다가 돌아와서 매우 고단한 상태라고 하고, 자신의 부인도 병이 있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본론은 李季鵬이라는 분이 상대방에게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묘하게 결혼철을 맞아 말을 빌릴 수 없어 가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전하는 한편, 이에 말을 한 마리 사려고 계획 중인데, 생각처럼 된다면 이번 달 말일이나 내달 초에 출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말이 갖고 있어 바로 떠난 육촌 종형제 而遠[金鎭大(1819~1885)]에 대한 부러운 마음도 드러내고 있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0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謹拜候狀。

近因花權譜事。日接貴鄕諸友。叩得
座下悰況。尤不勝馳賀。而係之以溸菀。嚴霜
戒寒。遠惟
棣床震艮珍衛。允友侍況佳吉。婦阿率幼
安好。堂內俱一樣未。種種往溯之至。弟昨日先
山立石所歸。憊綴忒甚。室內些憂。日甚一日。合
下費念無益。只任之而已。惟季君及諸從。姑無
它。爲慰。李季鵬兄曾有一面之雅。而年來
揆離極矣。自吾兄結査。心常鄕��。聞
久留貴中云。而未得因便一面。此又一恨也。
一晉之計。已至言煩。更不欲提告。但有馬借乘。
先望已有今無之歎。況今日乎。巧値嫁娶。
適時萬無借得之路。冬內畢竟不得遂計。
方擬買一鬣。此果如意。晦初方圖發。而
姑未知無揶揄也。而遠從卒然發行。有馬
者豈不快哉。尤不勝躄躠之歎耳。餘。燈
下澆草。萬不一宣。統惟
照在。
庚申陽月念六。査弟 鎭明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