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철종 11)년 10월 26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李季鵬과 만난다하여 가고 싶지만 말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전하는 편지
1860(철종 11)년 10월 26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李季鵬과 만난다하여 가고 싶지만 말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전하는 편지이다.
먼저 최근 安東權氏 족보에 관한 일로 매일 상대 쪽 고을인 寧海 사람들을 접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상대방의 좋은 소식을 들어 축하한다고 하고 있다. 김진명의 세 번째 부인은 안동 권씨(1831~1871)였는데, 이 당시 족보 때문에 안동으로 온 영해 지역에 사는 처가의 사람들을 자주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상대의 형제와 아들 등 여러 가족과 친정에 머물고 있는 며느리[南氏(1833~1886)] 및 손녀들의 소식을 묻고 있다. 김진명 자신은 어제 선산에 비석을 세우는 일로 갔다가 돌아와서 매우 고단한 상태라고 하고, 자신의 부인도 병이 있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본론은 李季鵬이라는 분이 상대방에게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묘하게 결혼철을 맞아 말을 빌릴 수 없어 가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전하는 한편, 이에 말을 한 마리 사려고 계획 중인데, 생각처럼 된다면 이번 달 말일이나 내달 초에 출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말이 갖고 있어 바로 떠난 육촌 종형제 而遠[金鎭大(1819~1885)]에 대한 부러운 마음도 드러내고 있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