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철종 10)년 8월 3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며느리와 손녀를 친정으로 보내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59(철종 10)년 8월 30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며느리와 손녀를 친정으로 보내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에 지난번에 부친 편지가 잘 전달되었는지 여부와 상대방 집안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이어서 김진명 자신의 집안에는 별다른 변고가 없지만, 근자에 며느리가 잘 먹지 못하여 야위어 이를 걱정하고 있음을 전하였다. 게다가 며느리가 사돈댁으로 행차하기로 했는데, 건강이 좋지 못해 만류하고 싶지만, 며느리의 뜻이 완고하여 행차를 보낸다고 하였다. 또 두 손녀도 움직일 형세가 아니므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행차할 때 교통수단과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김진명은 며느리의 행차를 갈 때 작은 가마에 태워 보내고 싶지만, 긴 여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짐이 많기 때문에 말에 卜鞍을 올려 말에 태워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였다. 또 행차를 며느리에게만 맡길 수 없어 자신이 여정의 중간 정도까지 데리고 갈 생각이니, 상대도 중간까지 마중 나오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또 여름에 상대방의 조카에게 말을 사다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답신이 없으니 혹 조카가 잊은 것은 아닌지 말하며, 말이 꼭 필요하니 사서 보내주길 부탁하였다. 추신으로 半行하는 것이 어렵다면 대신에 11일이나 비가 올 경우 12일에 길을 떠날 것이니 奴馬를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1차 작성자 : 박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