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6월 28일, 안동 川前의 金鎭明이 練制에 심부름꾼을 보내 위로해준 南生員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
1858년 6월 28일에 안동 川前의 金鎭明(1813~1872)이 練制에 심부름꾼을 보내 위로해준 南生員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는 연제에 일이 있어 상대방이 심부름꾼을 시켜 위문하니, 감정이 지극하여 감사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인사로 시작한다. 심부름꾼이 전해준 편지를 읽고 장마철 무더위에 형제분들의 생활은 잘 지내고 집안도 고르게 경사됨을 알게 되니, 구구하게 손을 모아 축하드리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어 본인과 가족의 소식을 전했다. 연제 때 비가 와 원근의 방문을 막은 것에 대해 김진명은 하늘이 일부러 장마로써 자신을 견책한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반성하여 슬퍼함에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며느리는 여름 내내 건강하지 못한데다가 체증도 아직 완전히 낮지 않았고, 허약한 아들은 대단한 병이 있는 듯 하니 미리 매우 걱정된다고 했다. 둘째 딸아이는 설사와 학질로 건강하지 못하고 걱정되고 쓸모없는 일도 있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김진명은 이 또한 자신이 쌓은 죄의 소치로 돌렸다.
반면 심부름꾼에게 들은 상대방의 소식에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상대방의 조카는 雨谷에서 잘 머물고, 또한 지난번에 직접 만나 공부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니 뛰어난 재주가 처음과 비교하면 배로 괄목할만하니 종씨형께 축하드릴 만 하다고 했다. 수로가 갑자기 넘쳐 심부름꾼을 2~3일 붙잡아 두려는데, 그가 간절하게 고하기에 보내기는 하지만 험한 길이 평탄치 못하여 매우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상대방이 보내온 편지에 연월과 성함을 빠트린 것을 지적했다. 혹 바쁘고 어지럽고 번거로워 그것을 살피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형이 평일의 고요한 성정에도, 오히려 이러한 실수가 있는데, 하물며 저처럼 성급한 흔들리는 자에게 있어서랴."하면서 스스로 경계하는 뒤 끝에 연월과 성함 빠트린 것을 바로 잡으니 헤아려 달라고 했다.
발신자 김진명의 본관은 義城,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며, 繼壽의 아들이다. 柳致明의 문하에 출입했다. 1844년(헌종 10) 소과에 합격했고,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문집으로 『吉軒集』이 전한다.
수신자는 알 수 없지만 영해의 호지마을의 南生員에게 보낸 것이다. 조선후기 의성 김씨와 영양 남씨는 혼인과 학문적인 교유 관계가 깊었는데, 이 편지에서도 김진명이 상대방 조카의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