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8월 28일, 金鎭明이 査兄에게 다음 달 날을 정하여 방문하길 바라는 내용을 담은 답장 편지
1858년 8월 28일, 金鎭明이 査兄에게 다음 달 날을 정하여 방문하길 바라는 내용을 담은 답장 편지이다.
편지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은, 상대방 딸의 죽음에 대한 위로이다. 김진명은 월초에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놀라고 기뻐 펼쳐보니, 둘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기가 막히고 목이 메었으며, 며느리와 함께 한바탕 서럽게 울었는데, 오랫동안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하물며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은 마땅히 어떻게 견디겠냐며, 위로했다. 김진명은 이런 상황을 아버지에게서 직접 목격한 바라 더욱 슬픔에 목이 메었지만 어쩔 수 없으니, 천명으로 받들어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군자가 달관한 방법이라고 했다. 스스로 너그럽고 슬픔을 억제하는데 힘써 상대방의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도량이 너그러워서 마땅히 어리석은 자신의 경계를 기다릴 필요는 없으나 서로 아끼는 지극한 마음에 누누이 말할 뿐이라고 했다.
둘째는, 상대방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가을장마가 때에 맞지 않게 내리는데 喪中의 생활로 몸의 손상됨이 없으며, 아들도 건강하게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묻고 아울러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김진명은 계절이 변하는 것을 보니 슬프고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사정을 다 말 할 수 없으며, 며느리는 우선 드러나는 병을 면했지만 다만 한결같이 연약한 체질로 이따금 병이 들려고 하여 매우 괴롭다고 했다. 다만 두 아이가 밥을 잘 먹으니 위로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셋째, 아이들이 상대방의 소식을 들은 이후 집으로 갈 마음이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情理를 생각하면 막기 어려우나 상대방의 심경이 좋지 않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면 도리어 불필요한 걱정을 끼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다만 며느리 때문에 형이 혹시라도 위로 될 길이 있다면 모름지기 다음 달 보름에서 20일 사이에 날을 정해서 알려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김진명 본인이 찾아가거나 심부름꾼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10일부터 연달아 비가 내려 물길이 평탄하지 않아 시일을 끌다가 지금에 이르러 매우 부끄럽다고 했다.
김진명은 편지를 맺은 이후 추록에 죄인으로 칩거하는 가운데 아직까지 나아가 위로하지 못하였지만 감히 당신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 또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한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피차 모두에게 유쾌한 일이니 다음 달 사이에 한번 찾아달라고 다시 간곡하게 말했다.
발신자 김진명(1813~1872)의 본관은 義城,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繼壽의 아들로, 柳致明의 문인이다. 1844년(헌종 10) 소과에 합격하였고,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문집으로 『吉軒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