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9월 27일, 金鎭明이 상대방이 방문하여 병으로 야윈 며느리를 위로해주길 요청하는 편지
1857년 9월 27일, 金鎭明(1813~1872)이 상대방이 방문하여 병으로 야윈 며느리를 위로해주길 요청하는 편지이다.
국모의 승하로 신민이 애통해 하는 내용으로 편지가 시작된다. 그 다음 상대방의 안부에 관한 것이다. 인편이 있은 후에 소식이 막혔으며, 喪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늦가을에 상대방 형제들은 잘 지내고 가족 및 집안사람들도 모두 한결같이 편안한지 물었다.
이어 본인과 가족의 안부를 전했다. 김진명은 완루한 목숨을 구차히 연명하고 있으며 해가 바뀌어도 장사를 미루고 있어 불효일 뿐만 아니라 도리를 거스른 죄로 죽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근래 비로소 臨川 先塋 동쪽에 혈을 정하고 임시로 안치하여 겨울을 지낼 계획이라고 했다. 족인이 고집을 피워 장례일이 다음달 14일이지만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효성이 부족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스스로 죽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편지를 쓴 가장 큰 이유는 며느리가 병약하니 상대방이 방문하여 위로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에는 며느리 모녀는 우선 드러난 병은 없다고 했다. 다만 일이 있는 집에서 힘써야 할 시간은 많고 편안한 날은 적어 지난 겨울 큰 병에 걸렸을 때에 병으로 야윈 것이 특별히 심해 보여 가여운 마음을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날씨가 매우 춥지 않으면 상대방이 방문하여 위로해주길 희망했다.
편지 서두의 ‘聖母’는 순원왕후(1789~1857)를 일컫는다. 그는 순조의 비로, 본관은 안동이며, 김조순의 딸이다.
발신자 김진명의 본관은 義城,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안동 천전 약봉공파이며, 繼壽의 아들이다. 柳致明의 문하에 출입했다. 1844년(헌종 10) 소과에 합격했고,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문집으로 『吉軒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