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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XF.1857.4717-20160630.07142570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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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명, 남흥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57
형태사항 크기: 27.2 X 3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괴시 영양남씨 괴시파 영감댁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5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1857(철종 8)년 7월 12일에 김진명(金鎭明)이 사돈에게 자신의 부친의 상사에 위문해 준 것에 답례하는 답조장(答弔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또한 장례를 잘 지내야하는데, 제대로 된 산이 없어 곤욕을 겪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며느리는 무더위 때문에 여위었으며, 두 손녀도 긴 여름동안 설사 병 때문에 고생한다고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57(철종 8)년 7월 12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부친의 상사에 위문해 준 것에 답례하는 答弔狀
1857(철종 8)년 7월 12일에 金鎭明(1813∼1872)이 사돈에게 자신의 부친의 상사에 위문해 준 것에 답례하는 答弔狀이다.
편지의 서두에 이전에 위문편지에 대한 답장은 예률 때문에 답을 못했지만, 상대의 지극한 성의에 감사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형제들과 맏아들 및 식솔들이 모두 잘 지낸다는 말을 듣고 위로된다고 말하였다. 이어서 김진명 자신의 집안의 안부를 전하였다.
김진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 또한 장례를 잘 지내야하는데, 제대로 된 산이 없어 곤욕을 겪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며느리는 무더위 때문에 여위었으며, 두 손녀도 긴 여름동안 설사 병 때문에 고생한다고 전하였다. 편지를 보내면서 상을 치르는 중이기 때문에 내용과 예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니, 편지를 받거든 바로 불태워 버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 것을 부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봉하는 元皐의 편지는 柳喪人이 약을 구해달라고 부치는 것이니 잘 전해달라고 하였다.
김진명은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文若, 호는 吉軒이다. 부친은 金繼壽(1783~1857)인데, 김진명은 장남이고 동생 金鎭誠(1820~1883)은 金潤壽(1782~1854)에게로 출계하였다. 본 편지의 수신자는 남흥수로서 본관은 英陽이며, 자는 穉猶, 호는 濠隱이다. 부친은 南景适, 조부는 南澤萬이다. 김진명의 첫째 아들 金麟洛(1833~1888)이 남흥수의 따님인 英陽南氏(1833~1886)와 혼인하였다. 김진명의 부친 金繼壽1857년 6월 26일 사망하였는데, 편지를 보낸 날은 7월 20일로 상을 당한지 한 달이 되어 보낸 편지이다.
1차 작성자 : 박경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7년 김진명(金鎭明) 서간(書簡)

拘於禮律。未敢修謝。然顧
執事尊慈特垂伻問。慰此罪逆不滅之人。苟非
吾兄切至之情。何以至此。旣感且泣。罔知所以爲謝也。謹伏審秋

棣床動止衛重。允玉庇節勻慶。區區仰慰之極。罪人尙今不
死。只是頑忍人也。且時月易流。不得不經紀襄禮。然從前無所占
注處。山窮鄙中尤甚。何以克成大事也。悲憫不已。季哀當變
不多日。又失單子。見其情地。令人哽塞。奈何。婦阿。近來廋脫
特甚。蓋緣困暑。且二嬌長夏注泄。姑未免死。種種費惱所致。見
甚憫憐。便回無紙面以問。甚恐俯薪。玆敢以數字奉呈。若其縷縷。
尤所不敢。幸卽付丙。勿掛人眼。無使重得罪於人。千萬。荒迷不
備。
丁巳七月十二日。罪人 金鎭明 疏上。

此去元皐書。卽柳喪人以求藥事所寄者也。幸因的便付呈。無
至浮沈。切仰。